(1)일 보다 먼저 자리 잡자|국내 기업들 베트남 진출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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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베트남이 우리기업의 해외투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값싼 임금을 이용한 임가공 수출의 장점보다 시장선정의 효과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남아시아국가들은 이미 일본이 10∼20여년 전부터 깊숙이 들어가 있어 일본보다 자본과 기술력이 훨씬 뒤지는 한국이 일본과 겨루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데 비해 베트남은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에 일본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늦어 그만큼 우리 기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 것이다.
베트남은 그 동안 프랑스·미국 등 외국의 강대 세력과 싸워오는 과정에서 외세에 대한 깊은 경계심을 갖고 있으며 역사와 문화가 비슷하고 상대하기가 비교적 손쉬운 한국에 대해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베트남투자는 이제 시작단계에 있어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빠르지만 몇몇 투자기업들은 나름대로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포항제철의 경우 일본보다 한발 앞서 베트남의 철강공장에 자본을 참여, 앞으로 베트남의 내수시장을 개척해갈 계획이며 미얀마에도 올 상반기중 대규모의 투자를 추진중이다.
포철은 지난해 11월21일 베트남 국영철강공사(VSC)와 합작사업을 위한 계약을 체결, 호치민 시내에 있는 아연도금공장 비나톤(VINATON)사의 지분을 50% 인수했다.

<"한국이 접근 쉽다">
합작사업에는 모두 3백90만 달러가 들어가며 포철은 이중절반을 투자한다.
합작법인의 이름은 포철과 비나톤사의 영문자를 따서 포스비나(POSVINA)사로 정했고 대표는 베트남인, 부사장은 포철 측에서 맡기로 돼있다.
이 달부터 본격 가동될 포스비나에서는 건축용 지붕재로 쓰이는 연간 1만t의 아연도금강판과 골판을 생산, 전량 베트남시장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포철은 이밖에도 파이프 등보다 투자규모가 큰 사업으로 확대시켜 모두 1억 달러 가량을 투자함으로써 베트남철강공업의 발전과 함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포철의 투자는 아직 규모는 작지만 일본보다 앞서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일본의 철강회사들은 포철의 계약체결에 앞서 포철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일본과의 합작투자를 추진했으나 베트남 측이 기술이 너무 앞선 일본보다 접근이 쉬운 한국을 파트너로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철강공사는 남부와 북부에 모두 8개의 철강공장을 갖고 있으며 포철의 합작파트너인 비나톤사는 남부에 있는 유일한 철강공장이다.
8개의 철강공장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다.
비나톤사는 지난 68년 중국계 베트남인이 설립했으나 75년 월남정권이 무너질 때 홍콩으로 달아나고 국가에 의해 몰수됐다.
이 회사는 그러나 사회주의의 비효율 때문에 제대로 가동이 안되고 있으며 포철과 합작을 하게 된 것도 공장의, 정상가동을 위해서였다.
비나톤사의 웬 수원 쭉사장은 『생산설비는 연3만t에 이르지만 91년도 생산량은 4천t에 불과하다』며 『근로자들이 일할 의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돈만 있다면 공장을 더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웬 사장은 『1년에 3∼4개월만 일을 하고있다』고 밝혔다.
종업원 1백6명을 두고 있는 이 회사는 현재 일반 근로자들에게 한달 30∼70달러를 주고 있으며 포철이 정식으로 베트남정부의 투자허가를 얻어 정상가동에 들어가면 최저 50달러의 월급을 주게된다.
이 회사 근로자 레 탕 라움씨는 『공장이 쉴 때는 정상월급의 60%밖에 급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포철과의 합작으로 월급이 올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포철은 현지근로자 4명을 한국으로 데려와 연수를 시킬 계획이며 앞으로 1백명의 종업원을 추가로 뽑을 계획이다.
포철의 박동철 베트남지사장(포스비나부사장 내정)은 『베트남의 주택지붕용 함석수요는 연간 1만5천t에 이르고 있어 일단 생산에 들어가면 판매는 걱정이 없다』고 말하고 『현재 북부의 철근 와이어로드생산공장인 타이뉴엔사가 포철과의 합작을 요청해와 2천만달러를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포철은 전기로 방식으로 연13만t을 생산하는 타이뉴엔공장에 20만t을 추가증설, 실비능력을 33만t으로 늘리고 중국의 남부와 라오스 등 인도차이나반도를 겨냥하고 있다.
포철이 이같이 베트남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일본의 선점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포철은 베트남 외에 미얀마에도 1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포철의 한 관계자는 『베트남과 미얀마에 대한 진출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았으나 인도차이나반도만큼은 일본보다 뒤질 수 없다는 판단에서 진출을 서두르게 됐다』고 밝혔다.
포철이 선점 전략으로 성과를 얻었다면 효동기업은 발빠른 진출과 노무관리의 성공으로 안정된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
현재 호치민 시내에서 임가공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 회사는 89년10월 마냥 오르기만 하는 임금을 견디지 못해 탈출하듯 베트남으로 빠져나갔다.
배낭과 가방·텐트 등을 생산하는 효동기업은 서울에서 1백인여명의 근로자를 두고 있었으나 30명으로 줄이고 대신 호치민공장에 6백50명을 고용하고 있다.
1천여평의 공장을 한달 5천 달러씩 주기로 하고 10년간 빌렸으며 이곳에서 만든 제품은 전량 미국과 유럽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수출규모는 6백만 달러. 원부자재는 관세를 면제받고 모두 한국에서 가져가고 있다.
공장은 당초 군 특수부대의 막사였으나 베트남정부가 군 스스로 기업단위로 꾸려가도록 조치함에 따라 군대가 외국기업에 빌려주고 돈을 받는 것이다.

<노무관리 어려움>
베트남 근로자를 구하는데는 어려움이 전혀 없으며 노조도 없고 일요일까지 공장을 돌리고 있다.
이 회사 이진섭 지사장은 『베트남근로자들이 손재주가 뛰어나고 한번 가르쳐주면 열심히 일한다』며 『노동의 질은 한국보다 오히려 낫다』고 말했다.
이 지사장은 『한국에서는 품질이 나빠 바이어에게 얼굴을 들지 못했는데 베트남에 와서 신용을 회복했으며 이곳에 진출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어려움은 언어소통이 불편하고 가족과 떨어져 있으며 베트남과 문화가 달라 노무관리가 쉽지 않은 점이다.
종업원들에게는 퇴직금적립과 식대 보너스 등을 포함, 한달 40달러가 들어가고 있다.
이 지사장은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근로자를 통솔하기 어렵다』며 『그러나 베트남인은 다른 동남아국가들과는 달리 정을 주면 돌아오는 게 있다』고 말했다
이 지사장은 한 달에 서너번씩 있는 종업원과 가족들의 결혼식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으며 한달 40∼50명의 근로자들에게 생일선물을 주고 있다.
회사에는 오전5시30분쯤 출근, 10시까지 일하고 있으며 근로자들과 밤샘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아쉬운 것은 베트남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 빚어졌던 국내업계끼리의 과당경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지사장은 『한달 2백 달러를 주고 기술자를 특별히 키웠는데 다른 한국업체가 오토바이와 5백 달러를 주는 조건으로 빼내갔다』며 『서로 협조하면 도와줄 수도 있는데 큰일났다』고 걱정했다.
베트남과 합작계약을 체결하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불량품을 선적, 한국기업의 신용을 떨어뜨리는 사례도 있다.
B산업의 경우 90년9월 베트남 측과 합작투자회사를 설립, 공장설비를 대기로 한 뒤 노후 된 기계를 보내 말썽을 빚었으며 이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공약남발 업체도>
대한무역진흥공사 조영복 베트남관장은 『한국과 베트남의 교역은 89년부터 본격화 됐는데 일부업체가 초기단계부터 신용을 지키지 않게 되면 전반적인 경제교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베트남상의 등에서도 한국업체의 약속불이행을 자주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관강은 또 『한국의 일부 불량업체가 베트남에 찾아와 공약을 일삼아 한국의 전체적인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며 『정부차원에서 이에 대한 홍보와 함께 적절한 구제책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정부의 관료주의적인 행정도 우리업체의 베트남진출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베트남정부는 현재 국교관계가 없는 한국의 기업인들에게 1년까지 베트남에 체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으나 한국정부는 3개월로 제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베트남에 상주하는 한국의 상사직원들이 3개월마다 한국에 다시 들어오거나 방콕에서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국내종합상사의 한 관계자는 『투자를 유치해야하는 베트남의 사정과 한국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겠으나 소련 연방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우월성이 드러난 마당에 과거의 냉전논리에 사로잡혀 기업의 활동에 제약을 주는 것은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차원에서의 투자전략마련도 시급한 과제다.
일본의 경우 막강한 정보력과 자금, 기술력을 갖고 있으며 대만과 홍콩은 1백만명에 이르는 화교를 이용해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베트남과 적대국이었던 프랑스도 경제협력자금을 무기로 접근하고 있으며 외국계 은행의 베트남진출도 줄을 잇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경협자금을 바탕으로 베트남에 진출하는 국내기업을 지원하는 한편 대규모의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글 길진현 특파원·사진 장남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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