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외화번역작가 민숙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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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영화제작자에 못지 않은 창작의 고뇌와 기쁨」. 이는 외화번역작가 민숙원씨(32)가 한편 한편의 외화를 번역할 때마다 동시에 맛보는 감정이다.
『영화언어는 장면과 대사가 연결돼 있이 매우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게 특징이에요. 배우의 연기에 생명감을 불어 넣어주는 대사로 번역하려면 온갖 어휘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지요.』
외화번역은 단순번역 이상의 창의성을 요하는 힘든 작업이라고 말하는 민씨는 외국인 못지 않을 정도의 영어실력과 작가에 버금가는 우리말 구사력이 영화번역의 필요요건이라고 설명한다.
영화가 제작된 나라의 문화가 우리와 다르고, 따라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도 조금씩은 다르므로 원작의 묘미를 살려내면서 우리 정서에 적합한 대사를 골라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민씨의 설명.
또한 민씨가 주로 하는 TV 방송 외화의 번역은 배우의 말 길이에 대사량을 맞춰줘야 하는 까다로움도 덧붙여 진다.
현재 프리랜서로 KBS와 SBS의 외화번역을 하고 있는 민씨가 이 분야에 발을 디딘 것은 지난 89년9월부터. 그 동안 만2년4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에 1백여편의 영화를 번역했다.
TV영화 담당자들로부터「특공대」란 별명으로 불려질 만큼 빠르고 정확한 번역으로 유명한 민씨의 작업속도는 하루에 2백자원고지 2백장을 번역해낼 정도. 특히 지난 설날에 KBS가 방송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SBS의『배트맨』두 편을 사흘동안 해치우는 능력을 발휘, 관계자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무엇보다 집안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에요. 돌박이 딸애를 일일이 돌봐주진 못해도 지켜볼 수 있는 것만도 큰 혜택이잖아요.』
어릴적 엄마가 직장생활을 한 탓에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녀와 함께 있겠다고 다짐했다는 민씨는 결혼한 여성에게는 이 직업이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민씨와 같이 3대 방송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영화 번역작가 총 30여명중 70%가 여성이다.
『기본적으로 영화를 좋아해야 해요. 또 이런 노래 저런 춤, 어려운 자연과학이나 희귀한 법명까지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야 하고요.』
연세대 국문과출신으로 외국어대 동시통역학과를 졸업 한 민씨는 영화를 통해 영어를 배울 만큼 영화광이었고 대학시절 노래·연극·운동 등 온갖 경험을 다해본 게 번역작업에 큰 힘이 되고있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외화번역작가를 정식으로 배출해내는 등용문은 없는 상태. 따라서 민씨는 1년반 정도 동시통역사 일을 하다 방송국을 찾아가 원서를 들이밀고 자신의 실력을 세일스(?)해 외화 번역작가로 일하게 됐다.
한달 평균 6∼10여편의 외화·연속물을 번역하는 민씨의 수입은 월평균3백만∼5백만원선.
SBS방송이 생긴 후 각 방송사간의 외화방영 경쟁이 치열해져 일거리가 많아졌다는 민씨는 웬만한 영어실력이 있는 여성들의 경우 외화 비디오번역도 해봄직 하다고 권한다.
비디오번역은 아직 TV방송 영화번역에 비해 수입은 월등히 떨어지나 우리나라에서 1년동안 번역되는 외화비디오가 2천여편을 넘어 전망이 밝은 분야다.
자신의 일에 남편이 항상 격려해 줘 무엇보다 힘이 된다고 말하는 민씨는「일에는 프로이나 가정에서는 충실한 주부」가 자신의 생활모토라며 활짝 웃는다.<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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