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밤 회담 깨질뻔 … 노·부시 통화로 풀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미 FTA 협상 결과 보고를 위해 4일 국회 통외통위에 나온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右)과 김종훈 수석대표(左) 등이 회의장 앞에서 얘기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결렬로 가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한.미 정상 간 전화 통화가 있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총지휘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4일 협상 뒷얘기를 밝혔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나와 협상 과정을 보고하면서다.

김 본부장에 따르면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자동차 문제에서였다. 협상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밤 한.미 양국이 자동차 문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FTA 협상은 한때 결렬 직전까지 갔었다.

김 본부장은 "자동차에 대한 (미 측의) 양보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미 측이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되는 관세 철폐 등을 놓고 막판까지 이견을 보였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때 (협상이) 결렬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라고 당시 심경을 털어놨다.

반전은 양국 정상 간 전화 통화였다. 당시 중동을 순방 중이던 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밤 방문지인 카타르 도하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노 대통령은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 "미국과 협상할 때 국제수역사무국의 권고를 존중해 합리적 수준으로 개방할 의향이 있고, 수입위생기준 절차를 합리적 기간 안에 마무리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정상 간 통화 후 협상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우리 협상팀은 쇠고기 수입 재개를 문서로 확인해줄 것을 요구하는 미 협상단에게 "노 대통령이 충분히 말한 만큼 (쇠고기) 수입 재개에 대한 서면 약속은 이면 합의나 다름없다. 절대 받을 수 없다"고 설득했다. 쇠고기 부분을 풂으로써 자동차 협상에서 미 측을 압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미 측은 30일 오전 4시 (우리에게 유리한 새로운) 제안을 내 협상에 들어갔다.

그는 노 대통령과 나눈 일화도 소개했다. 협상 직전 만난 노 대통령은 "FTA가 되건 안 되건 내가 정치적 부담을 안을 테니 협상팀은 장사꾼 사고와 논리를 갖고 협상하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김 본부장은 협상시한이 당초 알려졌던 지난달 31일(미국시간)이 아니라 미 의회가 주말을 보내고 공식 업무를 시작하는 4월 2일이 될수 있음을 사전에 예측하고 협상에 나섰다는 것도 소개했다. 그는 "협상의 법적 데드라인(주말)에는 미국 의회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마감이) 월요일(4월 2일)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다"고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도록 협상팀에 지시했다는 말도 했다.

개성공단과 관련한 뒷얘기도 털어놨다. 그는 "미국이 '개성공단을 너무 강조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부탁했지만 내가 '불가능하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 행정부는 개성공단 문제에 민감해했는데 정치적인 고려 때문으로 보인다"며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북한을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추측한다"고 했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협상 막바지에는 FTA가 꼭 돼야겠다고 덤벼들면 깨질 수 있지만, 반대로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판단해 입을 악물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미 측에 (이런 의지를) 몸짓과 표현을 전달하려 했다. 이런 것이 효과가 없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채병건.남궁욱 기자<mfemc@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 FTA 지식검색 : 국제수역사무국

국제수역사무국(OIE)은 동물 검역에 관한 국제기준을 수립하는 국제기관. 회원국은 130여 가지 가축 전염병의 자국 내 발생 상황을 보고할 의무가 있다. 축산물의 국제 교역은 OIE가 정하는 위생기준에 근거해 이뤄지고 있다. 5월 미국에 대해 '광우병 통제국가' 여부를 판정할 예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