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프로듀서와 가수로 만난 토니 안& 에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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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남자도…어쩔 수 없다'는 애절한 멜로디의 노래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신인가수 에반(24.본명 유호석.(右)).

그가 1990년대 후반 한창 활동했던 아이돌 그룹 '클릭 비'멤버였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의 앨범 프로듀싱을 H.O.T 출신 토니 안(29.본명 안승호.(左))이 맡았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같은 시절 아이돌 스타로 활동했던 이들이 10년이 지난 지금 프로듀서와 가수로 재회한 것이다. 아이돌 그룹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뮤지션으로 대중의 인정을 받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 그런 과정을 이미 겪었던 아이돌 선배인 토니가 후배의 '거듭나기'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만남이었어요. 정말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생기네요."(토니 안)

2002년 클릭 비 활동을 접은 에반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원래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음악에 대한 미련 때문에 뉴욕의 '더 뉴 스쿨 유니버시티(The New School University)' 재즈학과에 진학했다. 2004년 부모를 만나러 미국에 간 토니는 예전에 친분이 있던 후배 에반에게 연락해 그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라이브 카페를 찾았다. 그때 토니는 에반의 노래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클릭 비에서 활동하던 아이돌 이미지가 아닌 성숙한 뮤지션의 이미지가 물씬 느껴졌어요. 이 친구라면 내가 평소 하지 못한 음악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마디로 탐이 났죠."

당시 연예기획사 사업을 막 시작했던 토니에게 에반은 '사막에서 찾은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에반은 다시 가수로서 대중 앞에 선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 토니의 제의에 선뜻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은 꾸준히 음악적 교감을 쌓아가며 많은 의견을 나눴고, 결국 함께 음반을 내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저는 재즈에 몰입해 있었고, 토니 형은 팝적인 취향이었지만, 함께 많은 음악을 듣고 얘기도 하면서 다른 장르에 눈을 뜨게 됐어요."(에반)

"에반에게 들려준 데모 곡만 200곡이 넘어요. 타이틀곡을 정하는 데만 4개월이 걸렸죠. 말이 프로듀서지, 사실 저는 에반에게 음악을 갖다준 것뿐이에요. 에반의 음악 색깔을 지키면서 약간의 대중성을 입히는 작업을 했죠."(토니 안)

토니 안은 "뮤지션 스스로 만족하면 성공이고, 대중이 이를 사랑해 주면 그것은 보너스"라고 말했지만, 이들은 그 둘을 다 가진 듯했다. 팝.솔.록.재즈 등의 요소들이 세련된 도시적 느낌으로 포장된 이번 앨범은 음악성과 대중성이 절묘하게 조화됐다는 평가다. 앨범 전곡은 미국.유럽.일본의 실력파 뮤지션들이 작곡했다.

아이돌 스타.뮤지션.사업가에 이어 프로듀서로 변신한 토니 안. 음반 프로듀싱을 하며 또 다른 세계를 접했다고 한다.

"에반이 방송 첫 무대에 올랐을 때 심장 박동수가 내가 무대에 올랐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지더군요. 다리도 후들거리고…. 나 말고 다른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 그것은 이제껏 몰랐던 다른 세계였어요."

가수에게 아이돌 스타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아이돌 출신이라는 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죠. 다만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저는 클릭 비 출신 유호석이 아닌 신인 가수 에반이라고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에반)

"아이돌 스타와 뮤지션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실력이 뛰어난 아이돌 가수가 많지만, 늘 편견의 대상이 돼요. 이를 극복하려면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밖에 없죠."(토니 안)

글=정현목 기자<gojh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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