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법 남한법 그리고 통일법/최종고(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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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 나라의 구조는 그 뼈대인 법을 보면 가장 빨리 알 수 있다. 한국은 정치적으로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남한법과 북한법으로 양분되어 있다. 남북한 법의 이질화현상은 정치적 통일이 된 후에도 법적 통일을 이루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시사해준다. 우리보다는 덜 상호 이질화된 독일도 「흡수식」통일을 하고난 후에도 법적 통일의 작업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지금까지 북한법에 대해서는 자료 입수가 어렵다는 이유와 남한의 반공법등 법률의 개폐문제와 관련되어 미묘한 정치적 사항으로 은근히 기피되어 왔다.
○아직 법통일 못한 독일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는가는 둘째 문제고 남북한 법의 실상을 정확히 알고,바람직한 통일성을 지향하는 준비가 쌓여져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아무리 법전도 없고 법률내용도 공개하지 않는 폐쇄사회라 하지만 개방의 압력 때문인지 최근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87년 2월5일 개정된 형법,90년 9월5일 제정된 민법,동년 10월24일 개정된 가족법의 내용이 알려졌다.
이들 최신법률들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북한 형법은 총1백61조로 남한형법이 총3백72조인데 비해 매우 소략하다. 「국가는 범죄와의 투쟁에서 노동계급적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고 사회적 교양을 위주로 하면서 이에 법적 제재를 배합한다」(제2조)고 밝히고,「해로운 긴급사태를 능히 막거나 막을 사태를 세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버려 둔자」(제120조)를 처벌하는,남한 형법에 없는 불구조죄의 처벌조항도 보이고 「주운 돈 또는 물건을 국가기관에 바치지 않고 가진 자는 1년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제 135조)라는 사회주의적 인도주의의 규정도 보인다.
남한 민법이 총 1천1백18조인데 북한 민법은 총 2백71조에 불과하다. 「국가는 재산관계에서 사회주의적 소유에 기초한 인민경제의 계획적 관리운영을 강화하여 사회주의 경제제도를 끊임없이 공고히 하도록 한다」(제3조)고 밝히고 있다. 소유권은 국가소유권·협동단체소유권·개인소유권으로 나누고,「개인 소유는 노동에 의한 사회주의 분배,국가 및 사회의 추가적 혜택,터밭경리를 비롯한 개인부업경리에서 나오는 생산물,공민이 샀거나 상속·증여받은 재산,그밖의 법적 근거에 의해 생겨난 재산으로 이루어진다」(제58조)고 매우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철저한 사회주의 이념
북한 가족법은 남한과는 달리 민법전에서 독립되어 총 54조로 되어 있는데 「결혼은 남자 18살,여자 17살부터 할 수 있되,국가는 청년들이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사회와 집단을 위해 보람있게 일한 다음 결혼하는 사회적 기풍을 장려한다」(제9조)고 규정하고 있다. 「8촌까지의 혈족,4촌까지의 인척사이에는 결혼할 수 없다」(제10조)는 등 사회주의적이면서도 전통이 아주 죽지 않은 「희망적」측면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80년대 종반에 제정된 북한 법률에는 놀랍게도(?) 주체사상이란 표현은 안보이지만 사회주의 이념에 철저한 데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70년대에 제정되어 시행중인 북한 헌법(72년),재판소 구성법(76년),민사소송법(76년),어린이보양교육법(76년),토지법(77년),노동법(78년),인민보건법(80년),합영법(84년),환경보호법(86년)등에는 빠짐없이 주체사상이 명문화되어 있다. 어린이보양교육법은 북한이 자랑하는 법인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우리나라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조선노동당의 위대한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상으로 삼는다」(제5조)고 명시하고 있다.
이 주체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이른바 「사회주의 법무이론」 「혁명적 준법기풍운동」 「모범준법 군칭호쟁취운동」을 주창하고,남한법과는 매우 다른 재판제도,참심인·법률해석인제도,중재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한마디로 북한은 법이전에 교시와 운동으로 미리 알아서 예방적으로 법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단속하는 정적사회로 가라앉은 것같이 보인다. 그런 사회에는 법률과 법률가가 많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법치주의가 발달된 선진국의 관점에서 보면 남한법도 법규범과 법현실의 괴리는 말할 필요도 없고 법률제정과정도 기이하고 미흡한 점이 발견되는데,남한 법에서 다시 북한법을 보면 이질감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사회주의의 승리」의 표현으로서 「법의 고사」인지,법의 퇴화현상은 법학자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법의 문제점이 남한법의 우월성과 정당화의 근거는 될 수 없다. 남한법도 정치적 변혁과 사회혼란 속에서,국회와 당국의 무책임으로 입법이 바르게 되지 못한채 양산된 법제를 어떻게 가다듬어야 할지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어려운 이질감 극복
좀 단적으로 얘기하면 가장 극단적인 주체사상의 사회주의적 북한법과 가장 나쁜 의미의 개인주의적이고 자유방만한 남한법이 통일법이라는 이름 아래 접근을 시도할때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가. 말로만 자유·평등·정의를 부르짖다가 실제로 이를 제도화해 민족공영의 길을 제시할 사상과 논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지난 연말 청와대에서 「남북법률공동위원회」를 범정부적으로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법의 문제는 결코 정권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민족장래를 구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깊은 사려위에서 시행해야할 것이다.
국내 법무실에 전념하는 법무부 보다는 법제연구원까지 신설한 법제처나 총리직속으로 남북한 법제의 총체적 연구를 우선적으로 해나가야할 것이다. 새해에 각 분야에서 남북교류가 활발할텐데 기본적으로 기존의 논리와 이익을 극복하고 새로운 민족적 지혜를 법으로 다져나가는 것이 느린것 같으면서도 빠른 통일에의 길이라고 생각한다.<서울대 법대 교수·법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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