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과학기술 연구현장을 찾아서(10)|항공우주 연 비행제어 연구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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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조종사가 자리에 앉아 엔진스위치를 켜면 굉음의 엔진소리가 나면서 눈앞의 컴퓨터화면에는 드넓게 펼쳐진 활주로가 나타난다. 조종핸들을 잡고 각종 스위치를 작동시키자 폭발음과 함께 온몸에 활주로의 떨림과 급 가속의 속도감이 느껴지면서 화면은 고속·입체적으로 활주로를 달리고 있다. 조종핸들로 이륙을 시도하자 조종석이 뒤로 기울어지면서 화면은 이내 활주로를 아래로 두고 창공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런 비행모의 시험이 바로 세계적으로 최첨단 산업분야로 늘리는 항공산업의 핵심기술이자 필수기술인 비행 제어시스템의 한 모습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소(대덕연구단지 내)의 비행제어연구실. 지난89년 연구소 설립과 함께 창설돼 지금까지 국내비행제어 분야의 유일하고 독보적인 연구실이다.
『최근 선진국에서 오락용으로 사용하는「인공현실」시스템은 단지 몇 개의 조작장치와 화면만 제공하는데 비해, 이번에 개발하는 비행시뮬레이터는 고도·기압·연료·비행시간 등의 각종 계기와 음향·중력 감·속도감 등 이 실제 비행기에 탑승한 것처럼 제공되며 컴퓨터화면에 나타나는 인공현실과 똑같이 구현됩니다.』
비행제어 연구실장 김종철 박사(38·불 슈파아에로 대졸)는 조종석에서 일어나면서 이렇게 말문을 연 뒤 태풍·제트기류 등 악조건의 기상환경과 항공기결함으로 인한 비상착륙도 체험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현재 비행제어 연구실에는 김 실장을 비롯해 김응태(35·미퍼듀 대졸)·이인석(32·미텍사스오스틴 대졸)씨 등 박사 급 연구원 3명과 이해창씨(31·인하대졸)등 석사 급 연구원 4명 등 모두 7명이 국내 항공분야의 개척자로 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이 하고 있는 일도 ▲연구용 비행시뮬레이터 ▲비행제어시스템 및 실험용 비행기 ▲대전엑스포 지상관측비행선 개발 등 국내항공분야의 최첨단과제다.
이인석 박사는『첨단기술분야라 의뢰 받는 연구과제들이 많은데다 사회적 욕구가 기술수준보다 앞서가고 있어 매우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게다가 최초의 국산항공기「창공91」처럼 그야말로 우리 손으로 개발한 제품이 마치 의뢰한 기업 측이 개발한양 선전되는 외부환경이 연구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 박사는 특히『첨단연구분야에 맞지 않게 인적·물적 지원은 다른 연구소보다 뒤떨어져 있으면서 연구일정은 일방적으로 촉박하게 잡혀져 있어 매우 힘들다』며 유압프레스의 굉음이 시끄럽게 울려 대고 흙먼지가 날리는 등 연구분위기를 어지럽히는 창문너머를 가리켰다. 현재 비행제어연구실은 한국해사 기술연구소에 셋방살이를 하는 연구소 본관에서도 2km정도 떨어진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설립된 지 3년만에 뒤늦게 지어지는 연구소 건설현장의 한 귀퉁이에 석유난로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채 비행장의 격납고처럼 한기가 느껴지는 가건물에서 두꺼운 점퍼차림의 연구원들이 올 겨울이 춥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며 연신 입김을 뿜어내는 모습이 비행제어 연구실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책상마다 붙어 있는 외국의 최 신예 비행기 계기 판 사진을 바라보는 연구원들은 현재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짜증보다는 내일을 여는 밝은 모습이었다.【대덕=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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