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상영에만「진흥기금」부과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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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나라에서 우리영화보다 외국영화가 판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특히 개봉관이 서울보다 적은 지방도시의 경우는 더 심한 실정이다.
그 이유는 뻔하다. 우리영화를 상영하면 관객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한국영화 기획정보센터의 조사에 따르면「영화의 해」였던 작년의 경우 최다관객동원(서울기준)8편이 모두 외국영화였다는 것이다. 우리영화는『장군의 아들2』가 36만 명으로 겨우 9위에 올라 있을 뿐이다.
우리영화에 관객이 들지 않는데는 완성도 부족과 소재제약, 영세한 자본·기술, 관객의 외화선호풍조 등 안팎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외국영화를 즐겨 보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를 시장경제원리에 따른 단순한 상품으로만 보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문화행위다. 문화란 말할 나위 없이 한 나라국민들이 갖는 정신적 체험의 총체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심심풀이로 영화를 본다 하더라도 그것이 추구하는 가치에 길들여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가치관상실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폭력이 미화되어 미국식 우월 주의가 은연중 드러나는 미국영화의 정신적 폐해는 크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연간 1백46일 이상은 우리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해야 한다고 규정한 스크린 쿼터 제는 매우 당연하고도 다행스런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해 말 문화부는 법에 명시된 장관의 재량권을 십분 활용하여 서울 4대 문안을 제외한 영화관에 대해선 우리영화 의무상영일수를 20일씩 줄여 주었다고 한다.
『우리영화의 마지막 보루』라는 영화인들의 호소보다『문화진흥기금모집에 협조할 수 없다』는 극장 주들의「협박」이 먹혀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영화의 상영일수를 늘려야 한다고 강력 제언한다. 다른 분야에서는 곧잘 공권력을 내세우고 있는 정부이고 보면 이런 정도는 쉽게 해낼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빌미가 된 문예진흥기금을 외화상영에만 부과시키는 것도 우리영화 육성방안의 하나로 제기할 만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극장가를 미국영화업자의「안방」으로 내줄 수 없다는 점이다. 또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장세진<방송평론가·36·전북 남원시 죽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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