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밤샘 협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협상은 이해 당사자가 말로 의논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2차 대전 때까지만 해도 국가 간 분쟁은 대부분 무력을 동원한 전쟁을 통해 해소됐다. 19세기 프로이센의 프레데릭 2세는 "무기 없는 협상은 악기 없는 음악과 같다"고 갈파했고, 2차대전의 전후 처리를 지휘한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힘으로부터의 협상"을 천명했다.

전통적인 협상은 일정한 파이를 놓고 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이 잃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이었다. 협상의 대상이 단일할 경우는 이 같은 양태로 진행되기 십상이고, 대개 승패가 확실히 갈린다. 그러나 쟁점이 되는 의제가 여럿인 경우는 협상이 타결돼도 누가 이겼는지가 분명치 않다. 1960년대 제라드 니렌버그는 '승자 독식'의 협상 대신 '모두가 승자가 되는 협상'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이른바 '윈-윈 게임(win-win game)'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이를 두고 "양측이 모두 승자가 되지 않으면 어떤 합의도 영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론적으로 윈-윈 게임을 지향한다고 해도 막상 구체적인 협상에 들어가면 온갖 책략과 수단을 총동원해서 서로 유리한 결과를 얻으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특히 국익을 걸고 벌이는 국가 간 협상에선 막판까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다툼이 벌어진다. 여기서 흔히 동원되는 전술이 시간 끌기, 협상 중단 위협, 허풍 떨기, 미끼 던지기, 극단적 제안, 양자택일 강요 등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에서도 양측은 협상을 유리한 국면으로 끌고 가려고 마지막까지 이 같은 전술을 수시로 구사했다.

뭐니뭐니해도 협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집중력과 끈기다. 협상장에선 먼저 집중력이 떨어지고 조급해지는 쪽이 질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협상의 달인은 1980년대를 풍미했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다. 그는 중요한 정상회담이 벌어지면 일단 예정시한을 넘겨 시간을 끌었다. 고도의 긴장감이 수반되는 협상에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는 보통 세 시간이라고 한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웬만한 사람은 '빨리 회담을 끝내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상대방의 눈가에 집중력이 떨어지는 기색이 보이는 순간 비장의 협상카드를 들이밀면 대개는 받아들이고 만다.

한.미 FTA 협상대표단은 사흘간이나 밤샘 협상을 벌였다. 집중력의 한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과연 어느 쪽이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을지가 궁금하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