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칼럼

복 있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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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국은 복 있는 나라인가? 해방 후의 50년을 돌아보면 우리는 기적같이 복을 받은 나라였다. 한국전쟁으로 공산화될 위기도 겪었으나 그때 우리에게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미국이 한반도에 더 이상 개입하는 것을 꺼리고 있을 때 한미방위조약을 떼를 써서 끌어내 미국을 계속 한국에 머무르게 만들었다. 그때 공산화되었다면 우리가 지금과 같은 번영을 누릴 수 있었을까. 50년 전 우리는 아프리카 가나와 같은 수준의 나라였다. 세계 꼴찌권 국가에서 백수십 나라를 제치고 10위권 국가로 올라선 나라는 오직 한국뿐이다. 현대사 50년에서 복 있는 나라를 찾는다면 아마 한국이 그 첫 번째로 꼽힐 것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우리나라의 복이 다해 가는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정부 들어서는 받은 복을 스스로 차 버린다는 생각이 들게까지 했다. 일부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복 없는 나라를 닮지 못해 안달을 하기도 했다. 경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중국은 번창하고 일본은 다시 살아나는데 한국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경제만이 아니다. 국제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동북아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북한 핵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던 조지 W 부시 정부도 180도 변했다. 미국은 더 이상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한국은 그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듯했다. 경제적으로는 더 이상 뻗어갈 길을 못 찾고, 국제정치적으로는 외톨이의 길로 접어든 듯했다. 5000년 역사에서 겨우 50년 반짝하다가 다시 추락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앉아서 죽을 수밖에 없다. 선택은 두 길뿐이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 것이냐, 도전을 해 볼 것이냐다. 우리가 울타리를 헐고 미국과 경쟁을 해 살아남는다면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와 경쟁을 해서도 이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미국도 중국과 인도 등에 진출할 통로로서 한국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양국의 경제적 국익에 부합되는 것이다. 경제뿐이 아니다. 냉전이 끝남으로써 미국과의 안보협력도 우리가 과거처럼 미국에 일방적으로 기댈 수 없다. 그것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것이 경제적 협력이다. 약해지는 안보동맹의 끈을 경제적 끈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한.미 FTA는 그래서 우리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반미적이던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성사시켰다. 반공주의자 닉슨 대통령이 미.중 수교를 했던 것과 비슷하다. 역설이며 기적이다. 노 대통령의 과거 행적으로 보면 이해가 안 간다. 코드인사로 임기 내내 욕을 먹던 그가 이 사안을 놓고는 오히려 자기 진영을 배반했다. 정치인이 자기 정파를 떠난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정파를 벗어나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을 우리는 국가적 지도자(Statesman)라고 부른다. 결정적인 시기에 전혀 그렇지 않을 법한 대통령이 이런 결심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가 복 있는 나라라는 증거다.

복 있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다. 복을 누리게 되어 있다는 확신이 그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어 준다. 복 있는 나라라는 믿음이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 복 있는 나라가 가장 복 없는 나라를 두려워할 것이 없다. 우리가 받은 복을 그들에게 나눠줄 여유를 가져야 한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관용해야 한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들 때문에 오히려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했다"는 너그러운 마음을 갖자. 한.미 FTA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는 분야를 위해 더 큰 보상을 할 마음도 가져야 한다. 이런 마음들이 모인다면 복 있는 나라가 더 복을 받게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