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고차 팔러 바그다드 간 수출戰士 "2천대 팔아야 떠나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이젠 한국인도 안심할 수 없으니 변장하라고 이라크 바이어들이 권하기도 합니다."

이라크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이 피살된 바로 다음날인 지난 1일 수출 계약을 위해 요르단의 암만에서 바그다드로 들어간 대우인터내셔널 암만.바그다드 지사장 김갑수(50)이사. 그는 8일(한국시간)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전에는 엉뚱한 표적을 겨냥한 폭탄테러에 나까지 덩달아 희생될까 조심스러웠는데, 이젠 나 자신이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에 바그다드에 온 뒤 프린스 등 대우의 중고차 1천여대(2백만달러 상당) 수출 계약을 했다"며 "목표인 2천대를 채우고 크리스마스 직후에 부인과 아들이 사는 암만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金이사는 그동안 이라크에서 테러가 자주 일어나 회사의 지시로 암만에서만 지냈다. 그러나 이라크 수출을 추진했던 중고차 2천대가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항에서 기다리는 데다 이라크 바이어로부터도 계약하자는 연락이 와 바그다드행을 택했다. 한국의 오무전기 근로자들의 피살 소식이 전해진 직후다.

가족은 물론 서울의 본사도 "사업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며 말렸지만, 현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그가 별 탈 없을 것이라고 강변했다고 한다. 그는 "말리다 못한 회사에서 방탄조끼를 바그다드로 보냈다는데 아직 받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의 오무전기 근로자 피살 소식에 대해서는 이라크인들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金이사는 전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피살사건이 생기고, 미군에 협조하면 이라크인까지 테러당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1일 암만에서 바그다드까지 이른바 '국경택시'라 불리는 전세 지프를 타고 갔다. 두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는 거리가 9백㎞로 11시간 넘게 걸린다. 고속도로의 이라크 내 구간은 현대와 삼성이 건설했다. 전쟁 중에 다리 한곳이 끊긴 것을 빼고는 피해를 보지 않았다. 그는 "고속도로 노상강도를 만날까 걱정했다"며 "요즘 독일제 BMW 승용차를 탄 강도가 나타나 달리는 차에 따라붙어서는 총을 들이대며 차를 세우라고 하고, 달아나면 마구 총을 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바그다드 대우지사는 외국 대사관들이 몰린 만수르에 있어 전에는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국적을 가리지 않고 테러 표적이 된 지금은 무장한 미군이 계속 순찰을 돌고, 밤이면 매일 어디선가 총성이 들린다고 金이사는 전했다.

현재 직원들은 모두 철수시키고 金이사만 지사를 지키고 있으며, 잠은 2층 숙소에서 잔다. 음식 재료도 가져가 직접 한국 음식을 해먹는다. 수도 사정은 괜찮은데 수시로 전기가 끊겨 몇달 전 지사에서 마련한 자가발전기를 이용한다. 전화도 국제통화는 연결이 안될 때가 태반이다.

金이사는 "암만의 부인은 남편이 어련히 조심할까 큰 걱정은 안 하는데, 서울에 계신 팔순 노부모께 안부 전화를 드리면 몹시 불안해하시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金이사는 "한국 제품을 수입하겠다는 바이어들이 줄을 잇고 있다"며 "연말께 암만에 나와 본사와 연락해 수출 물량 등을 확보한 뒤 내년 초에 다시 바그다드에 들어가 계약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