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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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공천심사위원장은 정치생명을 끊기도 하고 살려주기도 하는 「서슬 퍼런 칼」을 갖고 있다.
물론 그 「칼」을 행사하는 전권은 여당의 경우 총재인 대통령이, 야당은 당대표가 갖고 있지만 현장에서 칼날을 휘두르며 위세를 부리는 자는 심사위원장(사무총장)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다 치열한 경합지역의 경우 심사위원장의 말 한마디가 총재나 대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 그의 행동거지에 경정자들은 마음을 졸이며 눈치보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공천 두 세달 전부터 으레 공천심사위원장이 되는 사무총장 집에는 경합자들로 붐비며 이곳 저곳의 청탁과 호소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니 정치판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꿈꾸는 「실세」자리다.
50년대 자유당 초창기시절엔 당원들에 의해 공개후보결정이 일부 있었으나 친위정치의 필요성, 야당의 경우 계보정치가 정착되면서 공천심사위원장 자리는 위력을 발휘해왔다.
특히 60, 70년대 야당은 공천심사위 역할을 한 조직강화 특위의 활동을 둘러싸고 시비가 잇따랐다.
심지어 78년 10대 선거 당시 신민당 조직강화특위 위원장이던 이철승 대표가 위원인 김영삼전총재의 기득권(거제-충무지역 추천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사람을 공천해 당권 싸움의 축소판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일단 조직강화특위 위원으로 들어가면 중진대열에 앞장설 수 있고 정치자금을 확보할 수 있어 부러움을 산다. 지금 민주당의 경우가 바로 그 모양으로 한국정당정치의 폐쇄성을 드러내고 있다.
여당의 경우 공천심사위가 그런 대로 활약한 것은 지난 13대 때 6·29바람의 물결을 탄 덕분이었다.
그러나 공천심사위의 역할은 제한돼 있었고 중진의원 제거의 창구로 활용되었다는 평판을 받았다.
민자당에 들어와 공천에 관한 당규가 더욱 세밀화 돼 사무총장이 위원장을 맡고 공정심사의 제도적 보장이 돼 있으나 활동의 폭이 늘었다고 보기 힘들다.
이미 청와대에서 상당수의 공천내정자를 정했다는 얘기이며 당내 대권싸움의 전초전일 수밖에 없어 세최고위원들의 영향력 행사로 심사위원장의 재량권은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든 경쟁자들의 정보를 알고 이를 토대로 일부지역에 「약속」을 해줄 수 있어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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