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그들의 빈곤 '그들 탓'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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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 가운데 끔찍한 게 하나 있다. 전세계 사망자들을 사망 원인 별로 분류한 다음, 사망 당시의 연령과 기대 여명과의 차이를 추산한 통계다. 이는 어떤 이유로 인류의 생명이 얼마나 단축되고 있느냐를 보여준다. 2000년 통계로 저체중에 의해 단축된 수명의 합이 1억2700만 년이나 됐다. 기아와 질병 탓에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이 많이 사망한 데 따른 것이다. 반면 같은 해 너무 먹은 탓(과체중)에 단축된 수명의 합은 2300만 년이었다.

빈곤이 얼마나 가혹한 현실인지 알 수 있다. 그럼 빈곤은 왜 생겨나고 누구의 잘못인가.

지은이는 지구 한 쪽에서 부가 성장할수록 다른 한 쪽에선 빈곤이 자라난다고 주장한다. 빈곤을 구조적 관점에서 본 것이다. 가난한 사람 개개인의 잘못이나 책임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 빈곤은 자원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잘 사는 나라들의 경제적 통제 때문에 생겨났다고도 한다. 그렇게 따지면 빈민은 부자의 탐욕의 희생자인 셈이다. 이런 주장은 반세계화 운동과 맥락을 같이 한다. 문제는 현실적 대안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책은 흔히 감성적인 호소성 대안을 내놓곤 한다. 이 책도 건전한 지역주의와 이를 주도할 대중운동을 제안한다. 하지만 냉혹하고 도도한 세계화의 물결 앞에선 너무나 가냘퍼 보이지 않는가. 다만 세계화의 전도사로 불리는 토마스 프리드만의 '세계는 평평하다''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등에 심취한 사람이라면 사고의 균형을 위해 읽어볼 만하다.

이 책은 2001년 영국의 잡지 뉴 인터내셔널리스트가 출간한 '아주 특별한 상식(The NO-NONSENSE guide)' 시리즈의 제2권이다. 세계화, 빈곤, 과학, 기후변화, 공정 무역을 다룬 다섯 권이 우선 나왔다. 무거운 주제들이지만 요약과 정리가 잘 돼있어 이슈 따라잡기에 유용하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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