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정상 무엇하러 만났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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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일 두나라 모두에게 개운찮은 뒷맛을 남긴채 정상회담이 끝났다. 최근 몇년동안 있었던 수뇌회담 처럼 말치레 수준에서 맴돌다 끝난 느낌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처음부터 이번 수뇌회담의 최대 과제로 여겼던 무역역조개선과 기술협력 분야에서 별다른 소득이 없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그 구체적 실천계획에 관한 논의를 하기로 합의한 것을 두고 성과로 보는 견해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실무자들이 마련한 실천계획의 협의대상이 실제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겼던 구체적 사항들이 포괄적이고 모호한 표현으로 바뀐 것은 물론 모두가 원칙적인 것들이다. 「무역역조개선과 기술이전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협력한다」는 원칙론이다.
이 원칙론을 들은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수뇌회담이나 관계실무자회의를 통해 되풀이 돼온 말이지만 그이후 구체적으로 실천된 예를 우리는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그러한 태도로 보아 구체적 실천계획을 논의한다 해서 정부가 요구하고 기대할만한 합의를 이끌어 내기 어려우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를 마치 성과나 되는 것처럼 말하여 국민에게 공연한 기대나 갖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 문제에 관한 일본의 태도에 대해서도 우리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 논리에서 보자면 일본정부의 주장은 우리로서도 많은 점에서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막대한 대일무역적자가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고 일본기업들이 막대한 자본과 노력을 들인 기술을 정부가 권유한다 해서 쉽사리 이전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긴 안목으로 볼때 단순히 경제논리만 내세워서는 계속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주요 교역상대국,그것도 아직 개운찮은 앙금을 청산하지 못한 한국과의 무역수지가 극심한 불균형 상태를 계속한다면 일본에도 유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일본이 경제적 논리보다는 정책적으로 좀더 과감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면에서 일본이 이번 수뇌회담에 보인 태도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번 수뇌회담에서 실망스러웠던 것은 비단 이뿐이 아니었다. 정신대문제로 야기된 과거사의 청산문제 때문이다.
이 문제가 때마침 미야자와(궁택희일) 총리의 방한시기와 맞물려 증폭됨으로써 한일 두나라 국민감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이 문제는 분명히 일본지도층의 잘못된 역사인식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당초 문제가 제기됐을때 일본정부 대변인이 올바른 인식을 갖고 그런사실을 부인만 하지 않았던들 이처럼 커다란 외교쟁점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증빙사료가 제시되고 나서야 뒤늦게 사과하는 태도때문에 우리는 일본을 아직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일본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총리라는 손님을 맞아 연일 계속되는 항의데모,회담밑바닥의 어색한 분위기 등으로 언짢아하지 않았을까 우려되는 면도 있다. 그러한 분위기가 이번 회담을 통해 조성됐다면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니다.
노대통령이 90년 일본을 방문해 천명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와 미야자와 총리가 이번에 서울에서 강조한 「아시아속의,세계속의 한일관계」가 이처럼 아직도 과거사에 얽매여 있음은 유감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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