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모면에 능한 일본인들/김국진 외신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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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야마토 다마시(대화혼),또는 야마토 고코로(대화심)란 말이 있다.
일본 민족정신을 이렇게 부른다.
일본에서 이 말은 「일본인이 가진 부드러운 마음」이란 뜻으로 흔히 해석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국어사전 『광사원』을 보면 「실생활의 지혜·재능」이란 뜻도 있다. 실리를 추구하는 일본인의 본심이 부드러운 마음속에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16일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일본 총리가 17년만에 한국을 찾아왔다. 한일 양국은 이번 미야자와 총리의 방한 기간중 ▲한반도 및 아시아 주변정세 ▲한일 무역불균형 문제 ▲정신대등 과거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첫번째 문제는 동북아에서의 한­미­일 협력체제를 재확인하는 선에서 보조를 맞추고 있으며 과거사 문제도 미야자와 총리 사과와 구체적 대책마련 약속으로 일단락될 것 같다.
얼마전 기자가 만난 한 한국 주재 일본 특파원은 『일본 정부는 구일본 제국주의로 인한 아시아의 대일 반감을 충분히 해소시켰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유독 한국과 북한만이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시각이라고 귀띔해줬다.
별로 급할게 없어 보이는 일­북한 수교협상에 일본이 힘을 기울이는 것도 외교적으로 과거의 빚을 모두 청산하고 아시아의 중심세력,나아가 세계의 정치대국을 꿈꾸면서 밟고 있는 수순으로 보아야 한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강조하고 있는 미야자와 총리의 이번 방한도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출발하려는 일본의 뜻을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참다운 과거의 청산은 감언으로 슬쩍 넘기고 「야마토 고코로」가 실리추구로만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 선결돼야 할 무역불균형 문제와 기술이전 문제에 대해 일본은 『기술이전은 기업간 문제다』 『무역불균형 문제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는등 회피식 발언만 계속하고 있다.
정부는 미야자와 총리와 실무회담에서 한일간 모든 현안에 대해 냉정한 자세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분명한 답변을 받아내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야마토 고코로」는 순간 순간을 피해가는 묘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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