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대형 서점-표절·저질 도서 판매 거부|『소설 동의보감』 표절 관련 「종합 서적 상조회」 결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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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국내 출판계의 해묵은 병폐인 표절·중복 출판을 막는데 서점들이 앞장서 화제다.
을지서적·동화서적·태평서적·서울문고 등 서울시내 10개 대형서점들의 친목단체인「종합서적 상조회」는 최근『허준과 동의보감』(꿈동산간),『소설 어린이동의보감』(산울림간)등 2종의 책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베스트셀러인 이은성씨의『소설 동의보감』을 표절했다며 원작자의 유족 및 창작과 비평사가 판매중지 가처분신청은 물론 손해배상을 위한 민사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나서자 자체적으로 내용을 검토한 끝에 두 책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판매를 거부키로 한 것이다.
또 진명서적 등 몇몇 도매 서점은 두 종의 책을 모두 반품처리 했고 지방의 일부 서점들도 이에 호응, 문제된 책을 진열하지 않는 등 출판계의 그릇된 관행에 쐐기를 박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전담직원을 둬 신간도서 입고 때부터 체계적으로 표절·중복도서를 선별하고 있는 을지서적은 불량도서 추방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종로서적도 지학사가 펴낸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네이딘 고디머의『보호주의자』를 표절한 한웅 출판사의 동명의 책 판매 거부에 앞장, 저작권을 보호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뿌리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표절·중복출판이 성행하는 이유는 87년 출판사 등록 자유화 이후 출판사수가 급증, 경쟁이 치열해진데다 단계별 유통기구와 독자들의 양서 선별 안목이 부족해 얌체 상혼에 의한 불량 도서가 이렇다할 차별 없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표절 도서의 경우 내용은 앞서 나온 책과 대동소이하고 표지·장정은 더욱 화려하게 꾸미는 데다 마진율이 높아 지방 서점일수록 더 선호하는 게 현실이다.
91년 초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죽은 시인의 사회』는 원작을 번역한 성현 출판사 판보다 영화 시나리오를 텍스트로 번안한 모아 출판사 판이 2배 이상 많이 팔렸을 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 도서 목록에도 모아판이 성현판 앞자리를 버젓이 차지했을 정도다. 독자들은 물론 도서관 사서들의 양서 판별 안복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 주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이 때문에 양심적인 출판인들이 서점에 거는 기대는 크다. 민음사 대표 박맹호씨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출판인들의 도덕적 불감증 탓으로 빚어지는 표절시비는 짧은 시간 안에 개선되기 어려운 만큼 독자들의 안목이 높아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서점들이 불량도서 추방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언론이 이를 널리 알릴 때 독자들의 안목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최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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