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유전쟁] 12. 두번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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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겉으로는 당차게 나가고 있던 나도 속으로는 회사가 망할지 모른다는 위기를 두번 느꼈다. 한번은 정부기관 때문이었고, 또 한번은 미숙한 경영 때문이었다.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의 일이다.

관계 부처에서 분유회사들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감사를 나간 직원들에게 상사들이 "꼬투리를 잡을 때까지 점검하고 오라"고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우리 회사를 나흘간 감사한 감사팀은 '식품 제조에 약품 원료를 사용하고 있다'는 혐의를 잡아냈다.

조제분유 원료 중 미국에서 수입해 쓰는 것이 있었다. 한 회사가 같은 제품명으로 생산하는 원료인데 두 종류였다. 성분은 같지만 순도가 달랐다. 순도가 높은 원료는 약용으로, 낮은 것은 식용 제품을 만드는 데 쓰였다. 약용 원료의 값이 식용보다 일곱배나 비쌌다. 우리 회사는 '최고의 원료를 사용한다'는 방침에 따라 약용을 쓰고 있었다. 감사팀은 이를 문제삼아 적발했다. 우리 회사는 경고조치를 받았다. 나는 반발했다. 이번에도 광고를 통해 "○○부는 왜 있느냐. 좋은 것 썼는데 왜 처벌하느냐"고 항변했다.

그러자 해당 부처 차관이 나를 불렀다. 만나자마자 그는 호통쳤다.

"崔회장은 왜 사사건건 쌍지팡이를 들고 반대만 하는 거요. 이 광고, 이게 뭐요."

"광고의 어디가 잘못됐소.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면 시정하지요."

"더불어 말 못할 사람이구만. 나가시오."

차관회의에서 이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파스퇴르가 오만불손해 정부의 위신이 손상되고 있으니 정부 차원에서 이 회사를 골탕먹여야겠다"는 결의를 했다고 한다. 나는 말이 '골탕'이지 '죽이자'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회사가 망하는 줄 알았다. 여러 사람이 "차관을 찾아가 빌라"고 충고했다. 학교 동문들이 조정역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빌러 가는 대신 깨끗하게 망하리라 결심했다. 회사를 정리하고 남는 돈은 직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손을 뗄 작정이었다. 이런 결심을 하던 날 새벽, 나는 어린 딸을 무릎 위에 앉혀놓고 울었다. 천우신조였던가. 다행히 차관회의 결의 사항이 장관회의에서 부결됐다.

경영을 잘못해 위기를 맞았던 사정은 이렇다. 나는 파스퇴르유업을 창업하기 전에는 큰 회사를 경영해본 적이 없어 어음의 유통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함정을 잘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은행돈은 한푼도 빌려 쓰지 못했다. 제품 판매 대금으로 받은 어음을 사채시장에서 할인해 왔는데 이 어음이 휴지 취급을 받으면서 부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제품 판매 대금을 앞당겨 수금하는 일도 여의치 않았다. 사방의 적들과 싸우느라 정작 중요한 돈의 흐름을 등한시했던 게 잘못이었다. 매출이 늘어난다고 반드시 회사가 잘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대책이 없었다.

돈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정신없이 알아보고 있는데 카폰이 울렸다. ○○금융기관의 원주지점장이었다.

"혹시 돈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거래 때문에 두어 번 만난 적은 있으나 그다지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무슨 얘기요."

"돈 쓸 일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당장 내일 모레 부도 나게 생겼습니다."

"얼마 정도 필요합니까."

"얼마 줄 수 있는데요."

"다섯장 정도."

부도를 막기 위해 당장 갚아야 할 돈은 3억원이었다. 그런데 다섯장을 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 위기를 넘겼다.

최명재 파스퇴르유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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