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 가점제' 시뮬레이션해 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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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확정된 정부안은 청약 가점제 적용 대상을 모든 주택으로 확대하고 도입 시기를 앞당기는 대신 추첨제를 병행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 1차 시안 발표 후 나타난 문제점을 정부 나름대로 반영한 결과다. 1차 시안에선 가점제를 아파트 크기에 따라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당시 가점제 대상에서 빠졌던 민간택지 85㎡ 초과 주택도 이번엔 포함됐다.

그러나 집을 넓혀 가려는 서민과 신혼부부 등을 배려했다고는 하나 이들의 당첨 확률은 여전히 높지 않아 반발이 예상된다. 더욱이 무주택으로 인정해 주는 집의 요건도 너무 까다로워 수도권에는 해당자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무주택 기간이 가장 큰 변수=주택산업연구원이 그동안 아파트 청약을 한 615명을 설문해 가점제를 적용했을 때 점수 분포가 어떻게 되나를 따져봤다. 그 결과 총점에 영향을 더 많이 주는 변수는 무주택 기간, 통장 가입 기간, 부양가족 수의 순서로 나타났다. 부양가족 수는 한 명이 늘어날 때마다 5점이나 높아지지만 대부분 가정이 3명 이하여서 당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무주택 기간은 분포구간이 넓어 무주택 기간이 총점을 좌우하는 데 가장 큰 변수로 분석됐다. 설문조사 결과 전체 청약자의 20% 안에 들기 위해선 가점제 점수가 최소한 40점은 돼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바꿔 말하면 자기 점수를 계산해 봤을 때 40점이 넘으면 전체의 20% 안에 들었다고 보면 된다는 얘기다. 총점이 50점 이상이면 5% 안에 속한다.

주택 보유자는 가점제로 인해 당첨 기회가 확 줄어든다. 가점제 적용 아파트에선 무조건 1순위가 박탈된다. 2순위는 인정되지만 그나마 2주택 이상자는 한 채 늘어날 때마다 5점씩 점수가 깎이기 때문에 사실상 당첨 확률이 거의 없다. 추첨제 적용 아파트의 경우 1주택자는 1순위 자격이 인정되지만 2주택 이상자는 1순위 자격을 박탈당한다. 따라서 인기 아파트 분양에서 주택 보유자의 당첨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 형평성 시비 여전=무주택 인정 범위가 너무 좁다는 지적이다. 18평 이하 5000만원(공시가격) 이하 주택을 10년 이상 보유해야 무주택으로 인정한 건 집을 넓혀 가는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하기엔 너무 인색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게다가 18평 이하의 5000만원 이하 아파트는 현실적으로 서울이나 수도권에는 거의 없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지적이다. 더욱이 수억원이 넘는 강남 아파트에 전세 사는 사람에겐 1순위를 인정해 주면서 10년이 안 된 5000만원짜리 연립주택 소유자는 1순위를 박탈하는 건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또 대형 오피스텔은 무주택으로 간주되는 것도 형평성 시비를 부를 수 있다.

정부는 앞으로 소득을 파악해 재산이 많은 사람은 감점하는 방안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영업자 등의 소득을 얼마나 파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부양가족 수에 따른 점수 차가 너무 커 신혼부부와 독신이 지나치게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주장도 있다. 더욱이 무주택 기간도 만 30세부터 계산해 신혼부부는 이 배점에서도 불리해진다. 애초 기대됐던 청약부금과 소액 청약예금 가입자에 대한 배려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논란거리다. 이들은 85㎡ 이하 민영주택에만 청약할 수 있지만 민영주택 공급이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이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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