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투데이

한국의 대선과 대북정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보수 진영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전국을 휩쓸었던 촛불시위 열풍처럼 부시의 이번 대북 유화 정책으로 진보 진영이 득세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02년 주한미군의 장갑차 사고로 한국 여학생 두 명이 숨지자 한국에선 반미 여론이 들끓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을 막지 못해 북핵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만일 2.13 합의로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들어선다면 대선을 앞두고 이득을 볼 수도 있다. 이번 합의는 한국에 좀 더 활발한 역할을 하도록 주문하는 것이며, 남북 양자 평화회담 또는 남-북-미 3자 평화회담 개최의 가능성을 크게 해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보수파들은 한국 내 정치 지도가 급변해 자신들이 권력을 잡을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한나라당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면서 한국의 대선 정국에 발을 들여놨다. 북한이 대선에 영향을 주기 위해 (6자회담에서) 전례없는 양보를 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남한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 다음에는 강경책으로 돌아설 것이다.

한국의 보수 진영은 부시가 북한에 속고 있는 것이며, 이런 유화책은 남한에서 진보 진영의 집권만 영속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2.13 합의가 정말로 한반도의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 평화를 불러 올 수 있는 엄청난 기회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보수 진영이 권력을 잡기 위해 이런 엄청난 기회를 희생해야 하는가.

한국의 진보 진영은 갑작스러운 부시의 대북 정책 변화로 용기를 얻은 모습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노무현 정부는 기존의 대북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 놓고 남북 대화를 활용해 통일에 대한 민족적 감성을 부추길 수 있게 됐으며, 남북 대화를 둘러싼 4년간의 침체와 실망 분위기가 끝나고 지지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됐다.

그렇지만 집권당 관계자들이 서로 남북 대화를 하기 위해 북한으로 몰려가는 것이 한국의 안보 상황을 개선하는 데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인가. 감정에 호소한 상징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한국의 국익과 안보에 어떤 이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북한이 과거 대선에 개입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했던 걸로 볼 때, 그리고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은 남한의 현 정부가 레임덕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실질적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하려는 동기에서 남북 대화에 임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래서 한국 유권자들이 북한의 남한 대선 개입 노력을 무시하는 한편,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긴장 완화를 모색하려는 집권당의 노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설사 남북 대화에서 한반도 긴장을 완화해 줄 중요한 돌파구가 마련된다고 해도 한국 국민이 대선에서 이를 후보 선택 기준으로 삼을지 의문이다. 그것보다는 경제.사회 문제가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국 유권자들은 대선 주자들이 남북 관계에서 어떤 입장에 있는지를 유심히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주자가 권력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과 당의 야망보다 국익을 앞세워 한국을 이끌지를 보고 선택해야 할 것이다.

정리=최지영 기자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