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학이 변하고 있다|고정된 이념 가치 탈피|부르좌 문학 재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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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북한의 문학은 최근 「90년대 속도」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90년대 속도」의 창조란 사회주의 현실을 반영한 문학 예술 작품 창작에서 당이 이룩한 업적을 이어나가며, 새로운 인간 성격과 다양한 현실 주제의 작품들을 창작하여 주체의 혁명 위업 수행에 적극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80년대 속도」를 강조했던 지난 80년대 초반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북한 문학에 나타나고 있는 변화의 조짐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한 문학의 변화는 이미 8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표출되기 시작한 몇 가지 징후를 통해 예견되었던 일이다. 80년대 중반 북한의 문학 내부에서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서정성 논쟁, 무갈등론에 대한 비판, 애정의 주제화에 대한 논의, 남한 문학에 대한 비판적 관심 등은 모두 고정된 이념적 가치에 매달려 있던 북한 문학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들이다. 이들 논쟁을 거치며 등장한 문학 작품들 가운데에는 서정시의 품격을 상당 수준 지키고 있는 작품도 있고, 개인의 내면 갈등을 포착한 애정소설도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현상은 최근 북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학 연구의 방법과 관점이 80년대 중반 이전의 그것과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1986년 사회 과학 출판사에서 간행된 유만·박종원의 『조선문학개관 Ⅰ·Ⅱ』를 보면 원칙적으로 주체 사상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관점과 방법이 80년대 이전의 연구서들과는 전혀 다르다. 과거의 연구서들이 부르좌 문학에 대한 절대적 배제 원칙을 변동 없이 지켜나갔던 점과는 달리 이 책에서 처음으로 이광수·염상섭·채만식·이효석 등의 작가가 논의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물론 상대적 배제 원칙을 새롭게 적용하여 비판적 평가를 가하고있다.
최근 국내 살림터라는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소개한 1988년 북한 과학 백과 사전 출판사 간행의 『우리 나라 비판적 사실주의 문학 연구』 (부교수 준 박사 이동수 지음)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이 책은 1910년대에서 1920년대까지의 문학을 이른바 비판적 사실주의 문학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그 문학사적 의미를 해명하고 있다. 이것은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대두되기 시작한 현실 지향적인 문학 경향을 사회주의 미학의 관점에서 접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이광수의 『무정』이나 『개척자』와 같은 소설도 모두 비판적 사실주의 문학의 성립과정 속에서 일정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현진건·나도향과 함께 채만식의 1930년대 초기 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시인의 경우는 김소월과 한용운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가난한 인민들을 일반화하면서 그들에게서 사랑하는 모든 귀중한 것을 빼앗아간 당대 환경에 비판의 화살을 돌린 문제작으로 평가하면서 치밀하게 작품들을 분석한 대목은 과거의 문학 연구서에서는 한용운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었던 점과 좋은 대조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8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남한에서의 이념적 개방 작업과도 연관되고 있다는 점이 또한 흥미롭다. 1988년에 단행된 납·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조치에 따라 우리 학계에서 한동안 월북 문인 연구가 성행한 점과 대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북한 문학의 변화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든 간에 궁극적으로 남북한 문학의 통합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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