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문화를 위하여>남북 교류 향한 전문가들 제안 (3)|"정치성 배제 프로 공동 제작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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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통일에 한발짝 다가서기 위한 방송 교류의 중요성은 곧잘 독일 통일의 예에 비유된다.
통독 과정에서 그랬듯 우리 역시 방송의 상호 개방이 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정부·학계·방송계는 다같이 우려하고 있다.
다른 분야보다 방송의 경우, 교류를 어렵게 하는 이질성이 두드러지며 상호 불신의 골도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양측의 차이점은 라디오·TV에서 찾아진다. 중파·FM·해외 방송으로 나눠진 라디오의 경우 주파수 대역은 같아도 출력이 다르고 알맹이 또한 큰 차이를 보인다.
주목할 것은 기존 시설을 재조정한다면 기술적인 문제는 별로 걱정할게 못된다는 방송 전문가들의 견해다.
보다 큰 문제는 북한의 선전성에 치우친 방송 내용과 채널 선택권의 제한이라는 지적들이다.
TV는 상황이 더욱 복잡하다. 송 출방식이 판이하게 달라 남한은 NTSC방식, 북한은 PAL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휴전선 부근에서 상대편 TV를 보더라도 흐릿한 영상만 나올 뿐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정상적인 방송으로 치기 어렵다.
과거 동·서독의 TV송출은 각각 SECOM, PAL방식이긴 해도 우리와 달리 유사성이 많아 시청이 가능했다.
TV에 관한 한 동·서독이 사촌지간이었다면 남북한은 사돈지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그만큼 어려움이 많다.
이런 여건 속에 서로 남북 화해 분위기에 힘입어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져 왔다.
80년대 초부터 간간이 방송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정부 등으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80년대 말에는 학계·정계·방송계 등 각계의 적극적인 관심 표명으로 이어졌다.
90년8월 KBS사장은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위원회에 남북이산가족 찾기·자연 생태계 TV프로그램 공동 제작을 제의하기도 했다.
일본 등 제3국을 통해 들여온 북한 방송 프로그램들이 방송된 것도 이 무렵 전후였다. KBS-TV 『남북의 창』, MBC-TV 『통일 전망대』 등 프로는 단편적이나마 북한 사회에 대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북한은 이렇다할 반응이 없다가 90년 매우 주목할만한 조치를 취했다.
그들이 평양·서울에서 열린 남북 축구 경기 녹화 프로그램 상호 교환에 동의한 것이다. 당시로선 꽤나 신선한 사건이었고 비이념적·비정치적인 프로그램은 상호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방송 개방은 정보·정부 체제의 개방 등으로 이어지는 특이성 때문에 물어야할 난제가 도처에 깔려 있다.
정부·학계·방송계 등에서 내놓는 바람직한 방송 교류에 대한 의견은 그래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전반적인 시각은 비정치적 프로그램 교환을 시작으로 단계적인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강현두 교수 (서울대·방송론)는 『방송 교류는 상호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제한 뒤 『남북한이 아닌 제3의 지역, 제3의 국가에서 방송 교류와 공동 제작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최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ABU)에 가입한 점을 고려, 이같은 국제 기구를 활용한 간접 교류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 교수는 덧붙였다.
방송 개발원의 송재극 연구위원은 좀더 현실적인 제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로 프로그램을 교환하다가 판문점에 공동 방송국을 세워 접촉 빈도를 높인 뒤 서울·평양에 있는 방송사를 적극 이용해야 한다』는게 송씨의 주장이다.
양측이 송출 방식은 달라도 프로그램 테이프 변환 시설을 모두 갖고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는 얘기다. 그는 종내엔 스포츠 분야 등의 동시 중계로 양쪽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심을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북한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방송 교류의 현실성을 감안, 정부가 주춤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 학계 일각에선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원우현 교수 (고려대·신문방송학)는 『대립 구도를 피하려는 정부 입장은 이해하나 방송 교류를 다른 것에 앞서 추진해야한다』며 『대남 방송인 개성 TV 문제 등을 해결해야 개방의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원 교수는 아울러 고적 답사·이산가족 찾기 등의 프로그램 제작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탈이데올로기적 방송과 함께 위성 방송 등 뉴미디어에 의한 동시 광역 방송이 가능토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 등도 나오고 있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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