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실험없이 약품 시판말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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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 옛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어떤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사전대비를 하지 못하고 사후에야 실수를 뉘우쳐 보완한다는 뜻이다. 보건사회부의 약사행정이 꼭 그형국이다.
보사부는 현재 국내에서 널리 시판되고 있는 의약품 가운데 무려 3백90여개 품목에 이르는 의약품들이 복용이나 투약을 했을 경우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히고 사용을 제한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특히 이들 약품 가운데는 졸음·시야장애 등을 일으켜 이같은 부작용을 모르고 복용후 차를 운전할 경우 시각장애나 졸음을 일으켜 교통사고 발생의 위험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생명의 위해 마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선 이러한 의약품이 한참동안 시판된 뒤에야 그 부작용을 밝혀내는 약사행정의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약품이 개발됐을 경우 충분한 임상실험을 거쳐 부작용을 확인한 다음,그 효능과 부작용을 밝히는 설명서의 명기와 함께 유통을 허가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며,국제적인 의약품관리의 수칙이 아닌가.
국제수준의 의약품 임상실험에는 적어도 환자의 자유의사에 의한 승락을 얻은 다음 투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로 돼있다. 또 처방된 약이 약제사에 의해 환자마다 기록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전제를 충족시키려면 제한된 특정의 환자에 대해 철저한 관리아래 투약이 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제를 무시한채 자유로운 시판을 허용한 것은 불특정 다수 국민을 자의로 실험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처사인 것이다. 약품설명서에 부작용이 명기돼있지 않으면 소비자는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 당국에 의해 확인된 것으로 믿어버리는 것이 우리 국민의 투약습관이 아닌가.
물론 이번에 부작용이 확인된 의약품들이 대중적으로 선호되는 것이 아니고 약사에 의해 특수하게 처방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그 피해가 광범위하지 않으리라는 변명이 가능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완벽한 실험을 끝내지 않은 약품을 시판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국민처럼 선전광고에 의존해서 임의로 약품을 선택하고,또 남용하는 경우는 더욱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요망된다.
외국에서 개발된 약품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물론이지만 외국에서는 부작용이 없다고 확인됐을지라도 인종적인 체질이나 문화적 배경이 다른 우리로서는 별도 단계의 실험도 아울러 실시하는 주의와 배려가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약품 임상실험의 기술수준과 정보수집능력이 선진국에 비해 뒤진다는 얘기들을 한다. 결국 예산과 인력·장비부족 타령이다. 그렇다고 약화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방관해서는 안된다. 국민건강을 위해 좀더 면밀하고 획기적인 약사행정이 실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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