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이사임용에 새 판도 이공계 출신 절반 넘었다|최근 9대그룹인사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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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올해 국내 대기업의 임원승진인사는 이공계출신이 절반을 넘었다는게 두드러진 특징이다.
또 연령층은 40대 후반이 승진임원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전체의 53%가 서울대·연세대·고대 등 3개 대학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재계의 별」이라고 일컬어지는 대기업의 임원자리는 샐러리맨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운전기사가 딸린 승용차와 개인사무실이 주어지는 등 권한의 폭이 부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지는데다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들어와 노력한 결과를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임원인사는 예년과는 달리 작년 말에 대부분 앞당겨 마무리 됐다.
지난달 11일 쌍룡그룹이 예년보다 한 달이나 앞당겨 임원승진인사를 발표한 이후 삼성·럭키금성·대우·선경 등 웬만한 대그룹들이 지난해 말로 정기임원인사를 마쳤다.
현대는 지난 3일 최대규모인 2백49명의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정기임원인사 때는 역시 누가 새로 임원의 대열에 끼었는가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지난해 12월 이후 임원승진인사를 발표한 대기업 중 30명 이상을 승진시킨 삼성·현대 등 9개 그룹(표 참조)을 분석해보면 임원수습생이라 할 수 있는 이사대우승진자가 3백82명에 이르고 있다.
이는 이들 9개 그룹의 전년 이사대우승진인원 3백69명보다 13명 늘어난 것이다. 특히 삼성은 전년 82에서 1백1명으로, 현대는 76명에서 83명, 대우는 36명에서 50명으로 승진규모가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이들의 나이를 보면 그동안 대기업의 인사적체가 얼마나 심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조사대상인 9개그룹의 최근 인사에서 이사대우로 승진한 인원 3백82명의 평균연령은 46·03세(현대의 경우 현대건설 신규 이사대우 23명을 표본으로 삼았다).
4년제 대학과 2년여의 군복무를 마친 뒤 대체로 26세에 첫 직장을 잡는다고 볼 때 최소한 20년은 걸러야 임원진 문턱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때 인사 10여년만인 30대 후반의 나이로 대표이사자리에 올랐던 이명박씨나 김항덕씨(유공사장) 등에 대한 신화적 인물담은 이제 옛말이 된지 오래다.
이번 인사를 보면 30대 사장은 커녕 첨단산업을 위해 유치한 박사급 고급두뇌에 대한 예우차원의 승진인사 몇 건을 빼면 30대 이사조차 이번 인사에서 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룹마다 50세를 넘긴 신규임원들이 심심찮게 들어 있어 50대 이사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올해 신규임원인사에서는 지난 수년간 강화돼온 기술중시 인사추세가 더욱 두드러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상 최대규모의 신규임원(1백1명)을 낸 삼성의 경우 53%인 54명이 이공계대학출신이었다.
이밖에 현대·대우·선경·쌍룡·코오롱 등 대부분 그룹들의 이사대우승진자 중 과반수가 이공계출신이며 이에 따라 9개 그룹 전체로 이사대우승진자의 53·4%에 해당하는 1백72명이 「기술임원」이었다.
특히 마키팅 위주 전략에서 탈피, 기술력개발을 통해 「세계1등 상품만들기」 운동을 그룹차원에서 벌여온 대우는 신규임원 50명 중 60%에 달하는 30명을 이공계츨신에서 발탁한게 특징이다.
전반적인 기술중시경향과 더불어 몇몇 기업에서는 2000년대를 향한 국제화의지를 담은 인사포석이 엿보인다.
선경이 새임원 31명 중 29%에 달하는 9명을 (주)선경에, 대우가 (주)대우에 절반인 25명을 집중시킨 것이라든가 삼성이 17명을 해외부문에 발탁한 점 등이 그것이다.
특히 최근 그룹 총수가 국제화를 부쩍 강조하고 있는 선경의 경우 2000년대 미래산업인 이동통신 등 정보산업에 뛰어들 여력을 키우기 위해 (주)선경에 승진인사를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현대는 모기업격인 현대건설에서 23명(28%), 삼성은 주력기업인 삼성전자에서 24명(24%)의 신규임원을 집중 발탁했다.
한편 공채제도가 일찍이 뿌리내린 몇몇 그룹은 물론 대부분 그룹들이 공채출신에서 반수이상의 신규임원을 내고 있다.
기업별로는 럭키금성 38명(전체임원 승진자의 86%), 삼성 70명(70%), 현대건설 20명(87%) 등으로 공채출신발탁이 두드러진다.
그룹관계자들은 『경영부진이 특정 그룹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닌데다 올해 더욱 불투명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영환경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대폭 승진인사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어려운 시기에 「별자리」를 많이 만들어준 만큼 이들 신임임원들에게 바라는 바가 더욱 커질 것이 틀림없고 여기에 최근 강조되는 자율 및 책임경영바람이 맞물러 임원 「자리지키기」가 전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고참부장 등 중간 간부들은 이번의 대폭 승진인사가 불투명한 경기전망과 함께 향후 수년간 임원인사에 병목현상을 초래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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