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에서 공동체의식으로(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특수한 경우를 예외로 한다면 사회는 다층구조로 형성되게 마련이다.
밝은 곳이 있으면 그 반대편에 반드시 어두운 곳이 있고,돈과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뒷길에는 반드시 궁핍과 억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다층구조의 상황속에서 사람들이 좀더 빨리,좀더 많이 원하는 바를 차지하고자 하는 심리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 가장 절실한 과제일 것이요,권력에 굶주린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집어 넣는 것이 필생의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사람들이 원한다고 해서 꼭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뿐더러 차지할 수 없는 것을 무리하게 차지하려다 보면 허욕이 생기게 되고,그 허욕이 커지다 보면 남의 것을 강제로라도 빼앗아 자기것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이상심리로 발전하게 된다.
문제는 어두운 쪽,가지지 못한 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밝은 쪽,가진 편에 서 있는 사람들도 하나를 가졌으면 둘을 가지고 싶어 하고,둘을 가졌으면 그것이 열이 되기를 갈망한다.
그들에게는 어두운 쪽,가지지 못한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두말할 나위없이 이것이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기주의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온 이같은 이기주의는 윤리·도덕등 사회의 기본적인 틀을 이미 망가뜨리기 시작했으며,「오직 나외에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는 극단적 자기애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근자에 일어난 몇가지 사소한 사건들이 우리사회의 이기주의적 세태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하나는 연립주택에 세들어 살고 있던 한 노인이 연탄가스중독으로 사망한뒤 보름만에 발견된 사건. 그 둘째는 대낮 큰길가에서 한 여성이 핸드백을 날치기 당했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있었던 일. 그 셋째는 한 젊은이가 흉기를 든 5,6명의 젊은이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고 있는데도 지켜보던 수십명의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던 일…,따위가 그것이다.
「이웃」의 개념이 사라지고,공연히 남의 일에 끼여들어 피해를 보기 싫다는 우리사회의 이기주의적 심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만약 앞의 사건들의 피해자가 자기자신이거나 적어도 자신의 가족들이었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틀림없이 주위사람들의 무관심을 욕했을 것이고,이기주의를 비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건들에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써서는 안된다. 내가,혹은 나의 가족들이 당할 가능성은 언제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지 않는한 사람은 어차피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도록 되어 있다. 의식주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의 어느 한 구석도 남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남과는 전혀 관련없는 독자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속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내가 번 내돈으로 먹고 사는데 남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다.
그러나 다시한번 곰곰 따져보자. 돈은 과연 내것이고,집은 과연 내것인가. 옷과 음식은 내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남에게서 내게로 왔으며 궁극적으로는 다시 남에게로 돌아 가도록 되어 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본디 남의 것이라는 생각,이것이 이기주의를 청산하는 길이다. 곧 무소유의 정신,이것이 분수를 지키며 사는 길인 것이다.
부분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듯,전체적인 삶이 모여 사회적 삶을 이룬다. 개체적인 삶이 이기주의·개인주의에 편승해 독자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면 결국 사회적 삶이 와해될 것임은 당연하다.
건전한 사회적 삶을 지탱하게 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공동체의식이다. 남이 있기에 내가 있고,나의 일과 함께 남의 일도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밝은 사회에의 첩경이다.
공동체의식은 한마디로 화해와 조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긍정적인 사고와 신뢰,그리고 자신의 삶을 이루어지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그 기틀을 이룬다.
불의와 부정에 대한 비판은 우리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 비판이 증오·질시로부터 비롯된 것이냐,화해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냐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밝은 곳에 서 있는 사람들은 어두운 곳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빛을 나누어주고,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가진 사람들을 따뜻하게 이해하는 것이 곧 「함께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다.
정치도 경제도 국제정세도 그 전망이 극히 불투명한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들 가슴속에 찌꺼기로 남아 있는 이기주의의 벽을 허무는일,그것은 우리사회를 밝은 사회로 안내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문제들을 해결하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