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게] 앞치마 대사 "이게 진짜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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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사우전드 원. 생큐!"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아름다운 가게. 계산대 앞에 선 외국인 커플의 손놀림이 날렵하다. 폴라 셔츠에 선홍빛 앞치마를 두른 드니 코모 주한 캐나다 대사와 부인 조슬린 여사였다. 팔고 있는 물건은 몇 달 전부터 대사관 직원들이 집에서 가져온 4천여점의 중고품.

친분이 있던 주한 뉴질랜드.노르웨이 대사관 관계자와 캐나다 출신 기업인들까지 가세한 이날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장은 이국적인 정취를 맛보려는 시민들로 오전부터 발디딜 틈이 없었다. 코모 대사는 "한국.캐나다 수교 40주년인 올해 여러 가지 행사를 했으나 안 쓰는 물건을 가져와 팔고 수익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번 행사가 가장 뜻깊은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사 부부는 "이날 행사를 위해 며칠 전부터 집을 샅샅이 뒤졌다"고 들려주었다. "아끼던 이브닝드레스와 이젠 필요없게 된 임신복을 내놓았다"는 조슬린 여사에게 "(임신복은)혹시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대사가 너스레를 떨자 좌중에는 폭소가 터졌다.

행사에는 얼마 전 지병으로 갑작스레 사망한 대사관 여직원의 기증품도 나와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고미진 공보관은 "숨진 지네트 위동씨가 자신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좋은 일에 써달라고 유언해 가족들의 허락을 얻어 옷과 신발 등을 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인기코너는 대사관 직원들이 직접 집에서 만들어온 케이크와 쿠키를 파는 매장이었다. 대사 부인이 직접 만든 바나나넛 브레드와 땅콩버터 쿠키는 일찌감치 품절됐다.

아름다운 가게에 자주 들른다는 김선원(29.여.종로구 삼청동)씨는 "특이한 물건도 많고 외국인도 많아 특별한 날이었다"며 "테이블 웨어 6개를 5천원에 구입해 뿌듯하다"고 말했다.

정형모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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