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지옥의 추격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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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결승 2국>

○ . 이창호 9단 ● . 창하오 9단

제12보(152~164)=영화 속의 인디언들은 능숙한 추격자다. 아주 사소한 흔적들을 통해 쫓아야 할 상대가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아낸다.

이창호 9단이 그랬다. 그는 판 위의 보이지 않는 흔적들을 계산해 냈다. 이론이나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추격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런 능력은 상대에게 공포감을 자아내게 됐다. 아주 먼 거리까지 떼어놓지 않으면 결국은 덜미를 잡히고 말 것이란 공포감은 초반이나 중반 전술에 무리한 영향을 미쳤고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었다.

154라는 기묘한 한 수에서 관전자들은 다시 '추격자 이창호'를 떠올린다. A의 이음을 대신하는 이 한 수에 창하오(常昊) 9단도 문득 가슴이 서늘해진다. 완벽하게 탄탄대로에 들어섰다고 믿었는데 아직도 아니란 말인가.

'참고도'는 흑이 후수라서 4의 요소를 밀려 버린다. 부득이 155로 두었는데 졸지에 6점이 떨어져 나가는 수가 남게 됐다.

창하오는 그러나 눈감고 157에 막았고(이 수가 중앙의 최대 요소다) 이창호 9단도 바쁘게 162로 삭감한다. 흑이 비로소 6점을 살리자(163) 백도 다시 한번 중앙을 뛰어(164) 새까맣던 흑진을 지워버렸다.

백은 분명 상당히 쫓아왔다. 구경꾼들의 머릿속에 한 가닥 의문이 뭉게뭉게 일어난다. 혹시 계가가 된 것은 아닐까.

제12-1보(165~180)=물 없는 사막에서 달아나고 쫓는 지옥의 레이스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반집 승부란 얘기도 나온다. 중앙엔 여전히 흑집의 가능성이 있어 1집 반이나 그 이상일 거라는 계산도 나온다. 177이 반상 최대였다면 180은 필사적인 역끝내기.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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