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산당 문 닫을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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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오귀스트블랑키 거리 64번지. 160년 전 카를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혁명을 논의하던 사무실이 있어 공산주의자들의 '성지'로 통해 온 곳이다. '에스파스 마르크스(espaces marx:마르크스의 공간)'라는 마르크스 연구센터가 들어서 프랑스 공산당의 두뇌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급 아파트 분양이 한창이다. 소유주이던 프랑스 공산당이 자금난을 못 이겨 몇 년 전 부동산 회사에 넘겼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 제3당의 위치를 지켰던 공산당이 지금은 당원 격감과 자금난으로 존폐 위기에 처했다고 일간 '파리지앵'이 최근 보도했다.

◆ 직원 집단해고에 당사 매각까지 고려=대통령 선거를 20여 일 앞둔 지금 공산당은 벼랑 끝에 몰렸다. 대선 후보로 나선 마리조르주 뷔페 당수의 지지율이 2%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패배라는 2002년 대선 당시(3.37%)보다 낮다. 선거법상 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국가로부터 보전받을 수 있지만 2002년에 이어 올해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당 회계를 담당하는 장루이 프로스탱은 "이번에는 처음부터 5% 득표 기대를 버리고 최대한 돈을 아껴쓰는 데 선거운동의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그나마 돈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최근엔 마르크스 관련 고문서와 책자들까지 내다 팔았을 정도다. 프랑스 공산당원이던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직접 디자인한 중앙당사를 매물로 내놨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그러나 이 건물은 지난해 역사유적으로 지정돼 팔기도 어렵다.

"노동자 해고 절대 불가"를 부르짖는 공산당이지만 최근에 '구조조정'을 실시, 85명이던 직원을 52명으로 줄였다. 2년 만에 두 번째 집단해고다.

당 안팎에서는 이번 대선을 끝으로 공산당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나 뷔페 당수는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당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최근 인터뷰에서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당원 감소다. 공산당원은 현재 13만 명 안팎이다. 81년의 7분의 1 수준이다. 전통적으로 젊은층에서 지지를 받았지만 이제는 옛정으로 남아 있는 중년 이상이 주류다. 이 때문에 70년대 43세이던 당원의 평균 연령이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49세로 높아졌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 프랑스 공산당은=1920년 창당한 뒤 60년대 말까지는 총선 때마다 줄곧 20%대의 지지를 얻었지만 90년대 동유럽 공산권 붕괴 이후 급격하게 쇠락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부유세 100% 인상, 주당 근로시간 32시간으로 단축, 최저임금 1500유로(약 180만원)로 즉시 인상 등의 공약을 내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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