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 복원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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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3년전 어느날이다.
길게 늘어섰던 외래환자들의 진찰이 끝나갈 무렵 정말 반가운 사람이 뜻밖에 걸어들어왔다.
그는 중학동창인 N교장인데 왠지 풀이 없어 보였다.
그의 부인은 3년전 아들과 딸을 태우고 손수운전 하며 친정에 다녀오다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에 부딪혀 모두 사망해 그는 처자식을 졸지에 잃은 것이다.
N교장은 10여년전 정관절제수술을 받았는데 복원수술을 해달라는 것이다.
『혹시 부인이 같이 온것 아니야』하고 물었더니 부인이 들어왔다. 중년의 참한 여성이었다.
40세의 미혼교사인 재혼부인이 자꾸만 아기를 갖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나 이혼하든, 사별을 하든 재혼하는 경우 새 부인의 강요에 의해 복원수술을 원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대략 30∼40%가 그렇다. 여성은 자식을 갖는다는 것이 사랑의 인지로 믿는 모양이다. 정관수술이야 보건소에서도 10분이면 된다. 돈도 들지 않고 거의 1백% 불임이 된다.
그러나 복원수술은 그게 아니다. 성냥개비만한 정관에서 실제 정자가 지나가는 내관은 바늘구멍만하며, 여기에 여덟바늘을 떠서 봉합하기 위해 10여만달러짜리 수술용 현미경을 사용해 수술해야한다는 사실등을 설명해야한다.
성공률도 모호해 수술후 정자가 나오면 일단 성공한것으로 간주하는데 이런 해부학적 성공률이야 80∼90%정도로 향상됐지만 실제 자녀를 갖는 율은 50%이하다.
특히 N교장같이 정관수술후 10여년이 지나고 남편이48세, 부인이 40세라면 정상적인 경우라도 임신율이 얼마나 될지 매우 의심스럽다.
그러나 사정을 너무나 잘아는 사이인지라 최선을 다해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하느님의 뜻입니다. 남편이 입원하고 마취를 하며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만해도 이 이상 부인에 대한 사랑의 표시가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부인을 달랬다.
그야말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올한올 봉합해 나가는 복원수술이었다. 이 불행한 친구에게 마지막으로라도 행복이 찾아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당시에는 속으로 너무 과한 욕심이라는 의구심을 떨칠수 없었다. 그러나 수술을 마치고 학교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갔던 그 친구에게서 임신했다는 연락이왔고 그후 부인은 딸을 무사히 낳았다. 참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N교장이 한턱 사겠다고 마련한 술자리에서 술김에 한마디했다. 『하느님께서 자네한테만은 미안했던 모양이네.』
※ 다음주부터는 채인정교수(고대의대·정형외과)의 요통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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