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통유리' 왜 못 보고 부딪치는 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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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회사원 A씨는 떠나기 직전의 통근차를 보며 내달리다 현관의 고정된 대형 통유리를 못 보고 그대로 들이받았다. 그가 온 시선을 통근차에 집중하다 보니 통유리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통유리에 아무런 표시가 돼 있지 않았지만 평소 같았으면 약간의 신경만 써도 통유리가 보였을 것이다. 이 때문에 통유리는 박살나고, 큰 조각 하나가 A씨의 허벅지 동맥을 잘라 그는 사망했다.

회사원 B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급한 마음에 건물 현관의 대형 통유리 너머에 있는 일행만을 보고 내달리다 통유리와 그대로 부딪쳤다. 다행히 통유리가 두꺼워 깨지지 않아 약간의 타박상만 입었다. 병원에는 이런 사고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가 종종 있다. 통유리를 못 보고 그곳이 확 터진 공간인 줄 알고 가다가 통유리와 부딪치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비록 대형 통유리에 스티커나 로고 등이 붙어 있지 않아도 약간만 신경 쓰면 그곳이 공간이 아니고 유리로 막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통유리를 보지 못하고 이런 사고를 당할까.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어느 한 곳에 집중하면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사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부주의에 의한 눈멈' 현상이다. 실제 미국 일리노이대 대니얼 시몬스 박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농구를 하는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한 팀의 사람들이 볼을 몇 번 패스하는지, 볼이 몇 번 튀는지 등을 세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과 우산을 든 사람이 농구를 하는 사람들 틈을 헤집고 지나가게 하거나 서성거리게 했다. 성인 46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실험 참가자의 절반 정도인 46%만이 고릴라와 우산을 든 사람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실험 참가자들은 패스와 볼이 튀는 횟수를 세는 데 집중하다 절반 이상이 그 외의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통유리를 못 보는 것도 통유리 너머 통근차나 동료에게 시선을 집중한 나머지 그외의 사물을 분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통유리에 빛이 반사되고, 고개를 약간만 돌려도 통유리 틀이 보이는 데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통유리 충돌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통유리에 색이 있는 스티커를 붙이거나 글자 등을 써 놓아야 한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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