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행 "북한이 돈 받을 은행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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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은 해제된 돈을 중국은행(BOC)에 개설된 조선무역은행 계좌에 넣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BOC 측은 "불법 자금을 받을 수 없다"고 버텼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BDA 문제 선(先) 해결'을 요구하면서 회담장에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

22일 나온 최종 방안에도 역시 BOC의 자금 예치는 없었다. BOC 측은 '자금을 제3국 은행으로 중개해 줄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북한 돈을 받을 은행을 미.중.북이 찾으라는 얘기였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제3국 은행을 찾아 협조를 구하는 것은 북한의 몫"이라며 "정 안 되면 북측이 BDA에서 직접 현찰로 찾든지 평양 소재 은행으로 보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3국 은행과 관련,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러시아 수석대표는 "북한 자금을 접수할 다른 은행을 현재 물색하고 있다"며 "베트남이나 몽골, 러시아에 있는 은행일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우다웨이(武大偉) 부부장은 북한에 진출한 한국의 외환 취급 은행의 협조를 받는 방안을 타진했다고 밝혔으나 한국 측 회담 관계자는 "중국이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 수석대표는 "우리는 올해 안에 핵 시설 불능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연내 불능화하기 위한 (초기 조치) 다음 단계 시간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BDA 해결 시기와 관련, "우리는 몇 주가 아닌 며칠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를 곧 중국에 파견키로 했다.

◆ "금융시장 원칙 먹혔다"=BOC가 중국 정부의 지시를 거부한 건 미 재무부에 의해 '돈세탁 은행'으로 찍힌 BDA에서 자금을 이체받을 경우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도 BOC의 이런 방침을 무시하지 못한다. 금융부실 청산과 금융개혁 추진을 밀어붙이는 현실에서 국제 금융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북한 불법 자금을 받으라고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중국은행의 지분 구조에 있다. 2년 전만 해도 중국 정부는 4대 국유 은행의 지분을 100% 가졌다. 하지만 그해 중국은행의 일부 지분은 금융개혁 차원에서 메릴린치.UBS 등 세계적인 금융기관에 매각됐다. 지난해에는 홍콩과 상하이(上海) 증시에 주식을 상장했다. 뉴욕 증시 상장도 추진 중이다. 중국은행 이사회에는 현재 메릴린치.UBS.테마섹.RBS와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유수한 금융회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베이징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중국 금융계에 두고 두고 회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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