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탄핵 때 가장 힘들어 선고 며칠 뒤 폐 일부 절제 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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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우리 주변에는 헌법재판소를 견제하려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헌재라는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열매를 맺으려면 험난한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을 맡았던 주선회(61.사진) 헌법 재판관이 22일 퇴임했다. 주 재판관은 퇴임식에서 "헌재에 의해 통제받는 국가기관과 헌재의 숙명적인 대치상황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헌재는 특정 정권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며 "앞으로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가운데 설득력 있는 결정을 통해 헌재에 보내준 신뢰에 보답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주 재판관은 6년 간의 재판관 기간 중 노 대통령 탄핵사건을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기억했다.

그는 "세계적인 이목을 끈 사건인데다 재판관들의 생각이 서로 달라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이를 조정하는 과정이 무척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주 재판관은 탄핵사건을 선고한 며칠 뒤 각혈이 있어 왼쪽 폐의 절반을 잘라내는 대수술까지 받았다. 탄핵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탄핵심판을 맡기 전에도 노 대통령과 묘한 인연으로 엮여 있다.

부산지검 공안부장 시절이던 1987년, 당시 부산지역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노무현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지휘했다. 대우조선 근로자 이석규씨 사망 사건에 개입해 장례식을 방해한 혐의였다. 그리고 17년이 지나 헌법 재판관으로서 노 대통령 탄핵 사건의 주심을 맡게된 것. 주 재판관은 "컴퓨터가 무작위로 주심을 뽑았는데 사건이 내게 배당됐다. 처음엔 담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건으로 무척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난해 전효숙 재판관이 임기 논란으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서 낙마한 뒤 소장 권한 대행으로 헌재를 이끌어왔다. 주 재판관은 "개인적으로 전 재판관이 가장 타격을 입었겠지만 열심히 쌓아놓은 헌재의 위상이 상처를 입어 안타까웠다"고 털어놓았다.

주 재판관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1969년 사법고시(10회)에 합격한 뒤 서울지검 3차장, 대검 공안부장, 청주.울산지검장, 광주고검장, 법무연수원장 등을 거쳤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 추천으로 헌법 재판관에 임명됐다. 그는 "로펌에 들어가 조직생활을 하는 것은 답답할 것같아 5월 쯤 서초동에 개인 사무실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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