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치무관심 증폭/정치도덕성 되레 뒷걸음질(결산 13대국회: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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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각제·당내지분 싸고 집안싸움만/잇단 비리·구속으로 부패 노출
독재청산과 민주화여망에 힘입어 헌정사상 초유의 여소야대정국으로 출발한 13대국회는 갑자기 비대해진 자신의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비하의 길을 걸었다.
13대 국회 초반 국정감사부활과 청문회 도입으로 절대권력의 부패상을 낱낱이 까발리며 정치 만개시대를 여는듯 했으나 3당통합과 그에 따른 대권암투,잇따른 의원들의 대형 비리사건 연루,날치기와 의사당 폭력사태의 회오리에 휘말려 정치불신의 껍질을 두텁게 쌓아갔다.
자유당·공화당·민정당에 이르는 40년의 독재체제를 일거에 날려버리고 국회도 「통법부」「권력의 시녀」 역할을 떨치고 민의의 전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으리라던 국민의 기대는 배신감으로 가득찼다.
정당의 인기도는 10%선에 머무른채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국민이 무려 60∼70%를 웃도는 사상최악의 정치불신을 몰고와 민주화의 원동력이던 지식인과 중산층은 정치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 결과 30년만에 부활된 지방의회선거의 투표율은 50%선으로 떨어졌고 이같은 정치무관심은 여당에 엄청난 반사이익을 남긴 셈이 됐다.
정치허무주의·정치냉소주의로 불리는 정치불신풍조는 그 원인을 따지고 보면 3김으로 대표되는 구시대정치의 부활과 이들의 무한대권경쟁,그리고 비뚤어진 여권의 대권갈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구태정치의 폐습이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3당통합이후였다.
3당통합이란 정국개편방법을 동원,거여로 변신한 민자당은 힘을 과신,90년 7월 임시국회에서 국군조직법·방송관계법 등 26개안건을 날치기 통과시켰고 무력감에 빠진 야당의원의 총사퇴라는 극한대립을 초래,4개월동안 정치를 공백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결국 안정속의 정치발전은 「공약」으로 끝났고 대화와 타협의 문턱에 들어섰던 국회는 여당의 강행통과와 야당의 선명투쟁이라는 구태의연한 정치행태의 반복속에 국민의 질책을 받고 외면당하는 결과를 자초했다.
3당통합후 여당의 정치지도자들은 급전직하하는 경제위기나 민생문제는 도외시한채 대권투쟁에 몰두,정치불신을 증폭시켰다.
통합의 전제처럼 인식된 내각제 개헌문제는 노대통령과 김영삼 대표·김종필 최고위원 등 통합주역 3인이 서명한 내각제 합의각서의 보도로 들통났고,김대표는 마산행을 결행,각서를 무효화시켰다.
계속된 민자당내 계파싸움의 중심에는 늘 내각제개헌문제가 불가사리처럼 도사리고 앉아 정국혼란을 부채질 했다. 권력구조 개편을 둘러싼 밀실합의와 대권갈등 사이에는 정치인들의 배신과 집권욕들이 묻어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야당도 신민당과 민주당 잔류파로 갈라져 지분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여 국민의 정치혐오를 부추겼으며 광역의회선거때 거액의 「특별헌금」을 챙겨 여야 할 것 없이 정치부패가 위험수위에 이르렀음을 실증했다.
올 1월 임시국회 개최와 함께 터진 상공위 뇌물외유사건은 그동안 관례로 묵인돼 온 의원외유시 업계와 관계의 「성의표시」가 「뇌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상공위의 이재근 위원장과 박진구·이돈만 의원 등의 구속사태를 낳았다.
잇따라 터진 수서사건은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정치권을 또다시 강타하면서 건설위의 오용운 위원장과 이태섭·김동주·김태식·이원배 의원 등 여야의원 5명의 대량 구속을 낳았으며 1개월가량 계속된 사건의 여진은 두김씨와 그 측근은 물론 청와대까지 파장을 미치면서 정치권 전체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가중시켰다. 정치권은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재수없이 걸렸다』고 한심한 인식을 보여 구조화된 정치부패에 젖은 모습을 드러냈다.
이밖에 89년 공안정국의 회오리속에 평민당의 서경원 의원이 밀입북한 혐의로 구속됐고 민주당의 박재규 의원과 이상옥 의원은 입법 등 직무와 관련한 뇌물을 받은 혐의로,이학봉 의원은 5공비리 연루혐의로,또 통일민주당의 서석재 의원은 동해재선거에서 후보매수혐의로 각각 구속되기도 했다.
구속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신진수·이교성 의원 등은 민사사건등과 관련해 입건됐으며 폭력조직과 연계되거나 공천과정에서의 수뢰 등도 끊임없이 정치권을 괴롭혔다.
정치가 경제·사회발전에 희망을 주는 윤활유역할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 하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아당기는 정치』『포니자동차 수준도 못되는 정치』라는 말에 누구나 공감하게 됐다.
독재체제의 그늘에서 기형적으로 생존해온 정치가 민주화의 밝은 태양아래서 성장하기에는 준비와 자질이 갖춰지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그 과제를 14대에 넘길 수 밖에 없게 됐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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