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북한의 선택만 남았다/노대통령 「핵부재선언」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구 전폭수용… 남 더 할일 없어/「합의서」타결전 예상했던 수순
노태우 대통령의 18일 핵부재선언으로 한반도의 핵문제와 관련한 남한쪽의 조치는 끝났다. 지난 11월8일 비핵화정책선언을 한지 40일만에 이를 완료한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남한에 배치된 미군 핵무기와 북한의 핵사찰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해왔으나 이로써 사실상 북한측의 요구를 전폭 수용한 셈이다.
한국만의 확인으로는 신뢰할 수 없다는 북한의 요구에 따라 미국도 「적절한 방식」으로 당국자가 이를 확인해 주기로 한미간에 협의가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국제의무인 북한의 핵사찰을 위해 이와 관계없다고 주장해온 갖가지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한 것은 북한의 핵문제가 국제적으로 최대의 현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고위급회담에서 동시사찰을 수락한데 이어 핵철수의 완료를 밝힘으로써 한국으로서는 더이상 할 일이 없을 정도로 마지막 카드를 다 꺼냈다.
지난 5차 고위급회담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라는 양측 관계의 기본장전에 합의한 이후 이를 설현하기 위한 신뢰구축의 첫 조치라는 점에서도 이번 핵부재선언이 지난 의미는 중대하다.
이 선언은 이미 북한의 외교부 성명이 나온 뒤부터 구체적으로 검토돼 왔지만 북측의 요청으로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제5차 고위급회담에 참석했던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남측의 동시사찰 수용에 대해 의외의 대응이라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북측은 이같은 남측의 전향적인 대응에 즉각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우리 체면을 세워달라. 핵부재선언을 해주면 연내에 서명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따라서 이미 북한이 외교부 성명을 통해 『핵철수가 시작되면 즉각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겠다』고 밝힌대로 연내에 서명이 이루어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북한이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면 핵문제와 같은 민감한 문제도 남북한 당사자간에 해결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 된다. 그러나 북측이 이를 거부할 경우 이 문제는 한국의 손을 떠나 그야말로 국제적인 해결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한미 양국은 그동안 세가지 방향으로 노력해 왔다. 첫째가 남북한 당사국간에 해결하는 것이고,국제기구를 통한 방식,개별국가의 영향력을 동원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한미 양국이 지난 7월 한반도의 핵문제는 남북한 당사자간에 해결한다는 원칙에 합의함으로써 일단 당사자간의 해결에 맞겨졌었다. 그러나 남측이 이같은 성의를 보이는데도 약속을 어기고 계속 핵사찰을 거부한다면 다른 조치들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내년 2월25일부터 열리는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에서는 북한의 핵사찰과 관련한 특별보고와 별도의 결의안이 추진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위협을 담은 이 결의안은 유엔안보리에 넘겨질 예정이다.
또 이와는 별도로 미·일·중·소·EC 개별국가의 압력이 이루어져 경제봉쇄조치도 이루어진다는 것이 당국자의 설명이다. 물론 미국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군사적인 대응도 다시 심각하게 제기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는 일단 북한이 내년 1월까지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수용하면 팀스피리트훈련을 중단하는 등 북측의 성의를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동시사찰이나 핵재처리시설 문제등은 그 이후에도 협의가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비핵지대화」를 주장하며 몇가지 고리를 다시 걸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첫째,미국의 핵선제불사용 보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지난 78년 제10차 유엔군축회의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포괄적인 「소극적 안보보장」(NSA)를 선언해둔 상태이며,개별국가에 대한 「적극적 안정보장」(PSA)은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북한이 이를 계속 요구할 경우 『북한도 미국의 NSA대상국가에 포함된다』는 것은 밝혀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또 한가지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 보호 문제다.
그러나 핵우산은 핵무기 비보유국이 피폭할 경우 보유국이 보호한다는 것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 이상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더군다나 69년 유엔 안보리결의로 핵우산 제도는 확립된 상태라는 것이다.
핵무기를 적재한 비행기나 함정의 영공통과나 기항문제는 부시선언에 의해 이미 함정에는 핵무기를 적재하지 않겠다고 밝혔고,공군전술핵무기도 철수했기 때문에 의미를 상실한 상태라는 것이다.
결국 이제 「합의서」에 양측이 합의해놓은대로 화해의 시대로 들어가느냐,아니면 이미 서명된 합의서조차 발효시키지 못하느냐는 북한의 태도에 달린 셈이다.
북한은 당초 동시사찰을 제의했으나 이는 사실상 사찰을 거부하는 구실이었을 뿐이었다. 우리가 동시사찰을 역제의하자 북측은 오히려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수용하는 방안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남측이 제의한 동시사찰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과는 별도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중복 사찰을 수용해야할 뿐 아니라 군사시설에 대한 상호검증 요구로까지 확대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북한은 빠르면 올해안에 IAEA협정을 받아들이고 내년 1,2월중에는 IAEA의 사찰을 허용할 것으로 기대된다.<김진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