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배 영해침범 8일/신상범 전국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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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항 북쪽 우리 해상에서 집단으로 불법조업을 해왔던 중국어선 3백99척이 17일밤 기상악화를 이유로 남제주군 화순앞바다에 피항함으로써 불법어로 사건은 8일만에 일단락됐다.
지난 10일 10여척이 나타나기 시작해 14일에는 3백여척으로 불어난 이들 중국어선들은 우리 경비정과 지도선이 사이렌을 울리고 물대포를 쏘아대며 확성기를 통해 목이 터져라 『고 아웃(Go Out)』을 외쳐댔지만 막무가내로 조업을 계속해 왔다.
더구나 이들은 수자원보호를 위해 저인망어업이 금지돼 있는 내해에서 두배가 양쪽에서 그물을 끄는 이른바 쌍끌이방식으로 조기·돔등을 마구 잡아올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해경등 정부당국의 대응은 지나치게 무능하고 소극적이었다.
우리 영해안에서 불법 조업을 하고 있음이 명백한데도 물대포를 쏘거나 철수를 종용하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중국어선들이 떼를 지어 우리 영해를 침범했는데도 제주해경에선 사건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16일 낮 취재진에 이들이 공해상에 있다고 사실을 은폐하다 기자의 현장취재로 불법조업행위가 드러나자 『공해상으로 이동중』이라며 사태축소에만 급급했던 일이다.
『군함과 해경은 무얼 한 것입니까. 우리 영세어민들이 한 상자만 잡아 올려도 가차없이 구속하면서 8일동안 속수무책으로 아량(?)을 베풀었으니 말입니다.』
이번 사건을 지켜본 영세 어민들의 불만은 이처럼 한결같았다.
물론 중국과의 수교를 앞두고 가급적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당국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양국간 수교도 중요하지만 우리 영세어민의 터밭을 짓밟는 불법행위까지 눈감아 준다는 것은 주권국가로서의 모습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단 중국영해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우리 어민들이 체포돼 중국에 수개월씩 억류돼 있던 전례를 들추지 않더라도 나라간의 외교문제는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8일동안 빼앗겼던 우리의 주권을 기상악화로 되찾은 셈이지만 우리어민들의 불법어로행위 단속은 형평을 잃게되는 또다른 숙제로 남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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