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무용|부정·비리 얼룩…"잊고싶은 한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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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차마 올 한해를 돌이켜보기가 끔찍하다』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음악·무용인들이 적지 않다. 대학입시며 악기거래를 둘러싼 대학 교수 및 강사들의 비리사실들이 연초부터 속속 법망에 포착되는 바람에 일반시민들이 음악·무용인들을 「우범자」인양 여기며 곱지않은 눈초리로 쏘아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위기상황을 더욱 실감나게 드러낸 이같은 사건들은 사실상 놀라울게 없는 일이라 할수도 있다.
건대와 서울대의 음대 입시부정사정이 보도되자(l월) 깜짝 놀라기보다는 『빙산의 일각이 마침내 드러났을 뿐』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입시부정을 둘러싼 거래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거물」들은 젖혀둔채 「피라미급」음악인 몇명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는 분위기까지 생겼다.
부산대·예술대 학생회의 설문조사에서도 약34%의 학생들이 교수들로부터 기부금·레슨비 등을 강요당한 것으로 밝혀져 예능계 대학의 오염된 풍토가 거듭 확인된 가운데 가짜 외제 고악기 밀반입·거래사건까지 터졌다(7월). 외제 유명악기(가짜거나 진품으로 확인되지 않은것)를 몰래 들여와 음대수험생들에게 수천만원 내지 1억여원씩에 팔아넘겨 폭리를 챙긴 악기상과 음대강사들이 구속된 것이다.
모처럼 전체 무용인들이 일치단결, 문화부가 92년을「춤의 해」로 제정·선포(8월)토록 하는데 일단 성공한 무용계는 이대무용과 입시부정사건(10월)으로 호된 몸살을 앓고 있다.
홍정희씨(전이대교수·발레전공)가 제자들을 이끌고 소련 연수 및 공연에 나섰다가(7월) 한 학생이 교통사고로 숨지자 그 학부형이 홍씨에게 건네줬던 사례금등을 돌려달라며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해묵은 입시부정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대 교수였던 육완순(현대무용)·김매자(한국무용)씨도 결국 잇따라 구속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국내무용계 「대모」들이 한꺼번에 퇴진, 과연 「춤의 해」를 제대로 치를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일고 있다.
문화부는 예능계 입시부정 해결방안으로 국립예술학교 설립을 추진해왔으나 최근교육부가 제동을 걸고나서 그 졸업생에게 학·석사 학위 대신 예술사·예술전문사 자격증을 수여키로 바뀌는등 이학교 지위가 약화될 조짐인데 그럴 경우 소기의 목적달성은 어려울 전망이다.
예능계입시 공동관리제를 폐지키로한 교육부는 「자율 관리」를 표방하면서도 실기심사에 타대학교수를 과반수 참여시키고 실기성적 반영률을 크게 낮추도록 종용하는 바람에 대학측과 마찰을 빚었다.
1년내내 「입시부정방지-와「예능교육 정상화」를 내건 논란만 요란했을뿐 이렇다할 묘안은 찾지 못한채 거의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
물론 국립예술학교 설립안외에도 ▲예능계입시 실기심사위원 대폭 증원▲국내 악기산업 육성 및 1백년 이상된 악기에 대한 수입관세 철폐▲대학교수들의 예고출강 및 수험생에 대한 개인교습 금지 등이 제시됐지만 어느것 하나 제대로 실행된바 없다.
원로 공연평론가 박용구씨는 『모든 음악·무용인들이 나는 누구이며, 예술은 무엇이고, 나는 왜 예술을 하나』를 자문하고 진정한 예술가·교육자로 거듭나는 것이 이같은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비리와 부정을 막기위한 각종 제도적 보완장치들이 제시되고 있지만「어떤 경우라도 부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관련자들의 굳은 의지 없이는 백약이 무효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임씨는 이상적 국립예술학교 설립을 전제로 사립대학의 예체능학과를 현재의 30%정도로 줄일 것을 제안한다. 10개년 계획으로 자율적 폐과를 종용하면서 입시부정·교수정원미달등의 결격사유가 생길때마다 신입생 모집을 금지시키면 학과수가 점차 줄어들뿐더러 「대학기업」에 대한 경고장 역할도 할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무용인들은 학부모들의 과욕과 제도를 탓하고, 사회는 「예술가적 양심을 돈과 맞바꾸는 음악·무용인들의 부도덕성」을 나무라는 가운데 엉뚱하게도(?) 예술의 전당과 문예진흥원 노조를 중심으로한 문화예술기관 종사자들이 최근 자생의 소리를 높이며 「문학 예술계 건강성 회복운동」에 앞장서겠다고 나섰다.
『이제 우리도 부정·비리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위해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음악·무용인들 자신의 철저한 자각과 실천이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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