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리베로' 이호 … 현대 '야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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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로 한 명을 바꿨을 뿐인데…."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구단 관계자들이 신이 났다. '돌아온 월드리베로' 이호(34.사진) 때문이다.

이호는 현대캐피탈이 2006~2007 프로배구 남자부 플레이오프에서 대한항공에 2연승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오르게 한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두 경기 동안 26개의 디그를 잡아냈고, 서브리시브 25개를 기록하면서 실패는 1개뿐이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각종 국제대회 수비상을 휩쓸던 월드 리베로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에게 이호는 '돌아온 탕아'였다. 올 시즌 시작 후 한동안 이호의 모습을 코트에서 볼 수 없었다. 이호는 지난해 10월 한국을 떠났다. 현대캐피탈 세터 출신인 진창욱이 플레잉 코치로 있는 호주 클럽팀에서 뛰기 위해서였다. 호주에서 선수 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며 가능하면 그곳에서 기반을 잡을 생각이었다. 감독과 구단은 그를 만류했지만 지난 시즌 오정록에게 주전 리베로 자리를 내준 이호는 한국 무대를 은퇴하고 호주행을 강행했다.

하지만 호주에서의 생활은 그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기 출전과 수입이 보장되지 않아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이민 생활이 만만치 않음을 절감한 이호는 결국 11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단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현대캐피탈에 전화를 걸어 "선수가 아니면 프런트 자리라도 좋으니 받아 달라"고 했지만 김호철 감독의 반응은 냉담했다. "제 발로 나간 선수를 다시 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월 초 주전 리베로 오정록이 훈련 중 발목을 심하게 다치며 이호에게도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호는 김 감독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정록이의 빈자리를 메우겠다"고 간청, 결국 복귀 허락을 받아냈다. 하지만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운동을 시작하니 무릎에 물이 찼다. 한동안 코트에 나가는 대신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어야 했다. 오정록의 빈자리는 컸고 수비가 불안해진 현대캐피탈은 리그 초반 숙적 삼성화재에 내리 3연패를 당했다. 이호가 선발로 복귀한 것은 11일 삼성화재전. 전날 한국전력과의 경기에서 오정록의 대타로 뛰던 리베로 김정래의 난조로 충격적인 1-3 패배를 당한 다음날이었다. 이호가 가세한 뒤 현대캐피탈은 안정된 수비에 힘입어 4연승을 달렸다. 탕아에서 효자로 거듭난 것이다.

김호철 감독은 "살이 많이 빠지니까 움직일 만하냐"며 싫지 않은 농담을 던진다. 이호는 "87㎏까지 나가던 몸무게를 운동과 절식으로 80㎏까지 줄였다"며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의 공격을 빈틈없이 받아 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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