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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강대국 학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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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①정협(政協) ②전인대(국회) ③국무원(행정부) ④공산당

정답은 ④번이다. 중국 헌법은 '공산당의 영도(領導)'를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산당 내 최고권력 기구는.

①군사위원회 ②정치국 ③서기처 ④기율검사위원회

답은 ②번이다. 정치국에서 국가와 당에 관한 모든 사항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주관식이다. 정치국 가운데 최고권력 부서는.

상무위원회다. 정원이 9명인데 서열이 분명하게 매겨져 있다.

현재 공산당 정치국원은 24명이다. 원래 25명이었지만 천량위(陳良宇) 상하이(上海)시 서기가 최근 숙청됐다. 이들 24명이 중국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

모든 정치국원에겐 각자 담당 분야가 있다. 최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중국 서열 3위)는 "몸이 두 개쯤, 아니 열 개쯤 됐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그만큼 바쁘다는 얘기다. 이런 정치국원들이 한 달 반에 한 번씩은 반드시 모인다. 1~2시간 회의가 아니다. 하루 종일 함께 지낸다. 모임이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목적은 학습이다. 정식 명칭은 '정치국 집체(集體)학습'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집권 뒤 생긴 일이다. 2002년 12월 26일 첫 수업이 시작됐고, 지난해 10월 23일 제35차 학습이 있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한 나라의 최고지도부 전체가 학습을 위해 1박2일 일정으로 모이는 국가가 중국 외에 또 있을까. 학습 내용은 지구촌 경제화, 에너지 대책, 국가발전 전략, 공산당의 집권능력 향상 등 다양하다. 중앙 당교(黨校), 사회과학원 등 국책연구기관.대학 등의 학자들이 한 번에 2~3명씩 강사로 초빙된다.

공부한 내용은 철저한 대외비다. 그러나 2003년 11월 24일 진행된 제9차 학습 내용은 공개됐다. 주제는 '세계 역사상 9개 주요 국가의 15세기 이래 흥망사'였다. 수도사범대학의 치스룽(齊世榮) 교수와 난징(南京)대의 첸성단(錢乘旦) 교수가 강사로 나섰다. 그리고 2004년 4월 9개국의 흥망사를 다룰 다큐멘터리 '대국(大國)의 굴기(起)' 제작이 결정됐다. 굴기란 벌떡 일어선다는 뜻이다. 3년간의 준비와 제작 끝에 지난해 11월 13일부터 24일까지 중국중앙방송국(CC-TV) 채널2가 이를 12부로 나눠 방영했다. 다큐멘터리는 강국이 되는 비결을 제도.국민교육.소프트파워로 요약했다.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근대 서방국가에 대한 기술이 상대적으로 객관적이고, 자유경제와 민주제도의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기만 할까.

1949년 공산정권 수립 이후 중국의 역사는 이데올로기 지향의 의식형태 사관(史觀)이다. 반면 '대국의 굴기'가 전하려는 내용은 일종의 패권(覇權) 사관이다. 9개국 발흥의 역사란 곧 교육.민주주의 등 좋은 가치를 모두 동원해 강성해진 뒤 다른 나라를 침탈한 패권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의식형태 사관으로 보면 중국은 제국주의의 피해자다. 그러나 패권 사관은 '역사는 힘있는 자의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점으로 보면 '대국의 굴기'는 중국 공산당 정치국이 내놓은 '이정표적 선언'이다. 과거의 도덕적 입장을 포기하고, 새로운 기회를 양보할 수 없다는 자세로 열 번째 '굴기하는 패권'이 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은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역사는 반복하지만 결코 기계적으로 똑같이 반복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현대는 결코 식민 확장의 시대가 아니며, 대국이 소국을 무시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후진타오 주석은 지금 대내적으로 '화해(和諧.함께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조화를 앞세울 때 중국은 비로소 진정한 굴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진세근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