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라의KISSABOOK] 고전으로 '책맛' 들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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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나무의 크기는 뿌리의 깊이에 비례한다. 거목이 되려면 뿌리를 튼실하게 박아야 한다. 문학의 뿌리는 고전에 있다. 지루하고 구태의연해도 어쩔 수 없다. 고전이란 처음부터 선뜻 친해지기엔 버겁다. 인내의 용량이 돼지꼬리만큼 밖에 안 되는 어린 시절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묘하다. 자꾸 씹을수록 새록새록 맛이 든다. 고전의 생명력은 바로 그 묵직한 여운에 있다. 눈앞에 현란하게 용솟음치다가 스러지는 찰나적인 소모품들과 깊이가 다른 것이다.

한국인에게 생소한 북유럽의 명작으로 고전의 문을 열어보자. 마리아 그리페의 '유리장이의 아이들'(비룡소)은 고전이라고 부르기엔 짧은 역사를 가졌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행간에 흐르는 아득한 태고의 분위기는 마치 이 책이 아담과 이브가 거닐던 에덴동산에서부터 발현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순박한 유리장이 부부와 사랑스런 아이들, 더 이상 소원할 게 없어서 불행한 성주의 아내, 점치는 노파와 그녀의 까마귀…. 이들은 조곤조곤 속삭이는 밤의 요정처럼 독자들을 '엉겅퀴의 솜털이 둥실 떠다니면서 마법처럼 대기를 은빛으로 물들이는' 신비의 세계로 이끈다. 책장을 덮고도 한동안 깨어나고 싶지 않은 영몽의 한 자락 같은 글. 여기에 사로잡힌 아이들은 '삶이란 요술을 부려서 정복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게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문학의 젖줄인 셰익스피어는 반드시 건너야 할 강. 플라톤은 "어떤 일이나 처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읽히고 싶은 책이 산더미 같아 마음이 급해도 '부모님과 함께 읽는 셰익스피어 이야기10'(삼성출판사)로 평생 문학 토양의 첫 삽을 정식으로 떠보자.

아이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난 느낌을 물으면, "급한 성질을 고쳐야 해요" "거짓말하면 벌 받아요" 같은 천진난만한 소리를 중구난방으로 뱉곤 한다. 부디 웃지 말고 진지하게 들어주시길! 셰익스피어의 주옥같은 문장에 매혹된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책과의 밀애에 빠져 영원한 책 사랑을 맹세하게 될 테니까.

케니스 그레이엄의 환상적인 고전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시공주니어)에는 시처럼 아름다운 묘사가 가득하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필사하며 거듭 음미하다보면 아이들의 문장력도 쑥쑥 자라날 것이다.

대상연령은 갓 고전학교에 입학한 11세 이상의 어린이와 다이제스트 판으로 지나쳐 온 고전에 마음의 빚을 진 엄마들.

임사라 <동화작가> romans8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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