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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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나라에서도 아주 옛날부터 산은 숭배의 대상으로 신성시되어 왔다.
숭산사상은 본래 고대 태양숭배의 신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태양에 접근하기 위해 높은 산령에 제단을 마련하고 태양을 숭앙하면서 산은 하늘로 인도하는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었다는 것이다.
산에 신령이 있다고 믿는 윈시신앙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 뿌리깊이 남아 있으며,우리의 건국에 관한 단군신화는 한민족의 발상과 건국이 산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준다.
산이 세속에 찌든 사람들에게 안식과 휴식의 공간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것도 산이 갖는 신성하고 장중한 의미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예부터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진 사람(인자요산)이라 했다. 곧 어진 사람은 모든 일을 도의에 따라서 하며 행동이 신중하기가 태산같으므로 산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산이 똑같은 비중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산이 보여주는 여러가지 모습,거기에 담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 정기 따위에 따라 각별하게 사랑받는 산이 있는가 하면 뒤떨어지는 산도 있다.
「명산」의 개념은 그러므로 흔히 생김새나 정기가 기준이 된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우리나라 12대 명산으로 금강산·설악산·오대산·태백산·소백산·속리산·덕유산·지리산·칠보산·묘향산·가야산·청량산을 꼽았다.
한데 명산의 개념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소 달라지는 것인지,최근 산림청 임업연구원이 전국 등산객 2천여명을 대상으로 산찾는 즐거움을 돈으로 환산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2명산에 포함돼 있는 산은 설악산(29만2천여원)·지리산(4만4천여원)·속리산(3만4천여원) 등 3개뿐이다.
물론 12명산중 몇몇은 북쪽에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오대산·덕유산·가야산 등 남쪽에 있는 산들도 하위에 처져있음은 산을 찾는 즐거움의 양상이 옛날과는 다소 달라졌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최근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된 조정권의 『산정묘지』에 대해 한 심사위원은 이렇게 평했다. 『작품에 나타나는 산의 모습은 아귀다툼과 비정,거리의 속기와 지린내,요컨대 우리가 사는 세속도시의 역상이다.』
과연 현대인들은 산을 「세속도시의 역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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