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선 대권싸움 나가선 날치기/박보균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회가 온통 거꾸로 가고있다.
날치기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라고 민자당은 강변하고 있으나 대화·타협은 뒷전이고 신종 날치기 수법 개발이나 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실감난다.
『목욕탕에나 가자』고 야당의원들을 능숙하게 따돌리는 유인술(건설위),간담회도중 회의를 선포해 눈뜬 야당의원들의 「코를 베가는」 전격성(내무위),호텔에 모였다 건물 뒷문으로 들어와 제3의 장소에서 감쪽같이 처리하는 솜씨(농수산위)는 혀를 내두를만하다.
사회석(위원장자리)을 야당의원들이 점거하게 내주고 일반의원석에 앉아있다 기습통과한 장면(재무위) 등은 본회의장 날치기를 모방했다.
김정길 민주총무가 『5공때보다 심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듯 날치기가 점점 다반사가 되고 국회의 토론과 표결이라는 절차는 아예 뒷전이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논리의 주장보다는 의사봉을 어떻게 숨겨 들고 갈까,어디에서 깜쪽같이 해치울까 하는 수법만 강구하고 있다.
단독처리·욕설·몸싸움·난장판을 빼고나면 할 얘기가 없는 것처럼 된 13대국회 후반기 장면들을 보면 누구라도 한심한 생각에 전저리를 치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못났으면 텔리비전토론회에서 『범죄꾼』 운운의 비아냥을 듣는대상이 돼버렸고,『아이들이 볼까봐 민망해 국회뉴스만 나오면 TV를 끈다』는 주부들의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
민자당의 서울출신 모의원은 『집안에선 대권싸움,집밖 국회에선 날치기만 한다는 비판의 소리를 들을까 당분간 주민접촉을 안할 생각』이라고 솔직히 털어놓고 있다.
민자당 의원들 스스로도 부끄러운지 『창피해 얼굴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토로하면서 지도부의 지도력 빈곤과 이상감각을 성토하기 일쑤다.
그러면서도 그들 자신이 사태를 개선하려는 노력,지도부를 비판하고 대안을 내려는 노력은 거의 않고 있다.
과거 여당의 권위주의를 비방하던 야당출신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들이 이 며칠사이 국민들에게 보여준게 과연 무엇인지 참으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그들이 범법자란 비난에 분노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