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소나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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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나무에 대한 우리 민족의 애정은 각별한 데가 있다. 소나무는 국토의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우선 친근감이 가는 나무다. 그러나 그런 나무를 꼽자면 소나무뿐만이 아니다. 아카시아나 상수리 같은 나무도 흔히 볼수 있는 것들이다.
소나무가 특별히 사랑을 받는 것은 한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고 푸르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핍박에도 굽히지 않는 충절의 표상이며,또 어떤 고난도 극복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의 시가에는 소나무를 읊은 글들이 적지 않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은 성삼문은 자신의 단심을 「봉래산의 낙락장송」으로 표현했고,직언으로 유배된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소나무의 변치않는 절개를 노래했다.
그리고 일제치하에서는 『일송정 푸른솔』로 불려진 민족의 노래로 등장,일제에 대한 겨레의 저항심을 고취시키기도 했다.
그 충절과 단심의 상징인 소나무가 우리의 애국가 가사에 들어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남산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기상일세….』
바로 그 남산의 소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환경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지역에 내린 비의 연평균 산성도(PH)는 5.1로 정상적인 산성도 5.6보다 훨씬 강한 산성비가 내렸다(PH가 낮을수록 산성도가 강함).
따라서 남산 토양의 산성도는 4.57로 소나무가 자라는데 적당한 토양의 산성도 5∼5.2보다 훨씬 강한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그 결과 남산의 소나무는 수목원이 있는 광릉의 소나무보다 변색과 낙엽률이 두배정도 높다. 말하자면 소나무의 생육이 그만큼 늦어지는 동시에 또 빨리 고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남산의 소나무가 날이 갈수록 푸르름을 잃어가는 이유는 산성비 말고 또 있다. 아카시아나 신갈나무등 다른 나무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햇빛을 많이 받아야 성장하는 양수인데 주변의 다른 키큰 활엽수들이 햇빛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애국가속에 나오는 그런 소나무는 20여그루에 불과하다는 조사도 나와 있다.
따라서 석회를 뿌리는 것만으로는 남산의 소나무를 되살리기는 어렵다. 남산 제모습찾기는 외형만 가지고는 안된다. 소나무를 살려야 한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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