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로마 못잖았던 '고대도시' 경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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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고대도시 경주의 탄생

이기봉 지음, 푸른역사, 383쪽, 1만4000원

삼국유사에는 전성기 신라 왕경, 즉 경주에 17만8936호가 살았다고 기록돼 있다. 한 호에 다섯이 산다고 쳐도 90만 인구다. 하지만 역사학계에선 조선 한양에 기껏 4만~5만 호가 살았고, 고대 경주가 사방 5.5km 정도의 작은 도시였다는 이유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17만8936명을 잘못 적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리학자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은이는 이 기록이 충분히 사실일 수 있다고 논박한다. 통일신라 때의 인구 규모나 경제력이 후대인 고려나 조선시대보다 못했다는 전제는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는 근대 이전 유럽에 통일신라보다 더 큰 통일제국은 로마나 알렉산더 제국 정도인데도 정작 우리가 신라와 경주를 과소 평가해왔다고 지적한다.

특히 '밥을 짓는 데 숯을 사용하고 땔감은 쓰지 않았다'는 기록에 주목한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들은 연기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취사용 숯을 별도로 썼다는 것은 난방과 취사 모두에 사용할 수 있는 온돌이 당시 경주까지 보급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땔감이 대량으로 필요하지 않아 경주가 에너지난을 겪지 않고도 90만 인구를 수용할 수 있었다는 추론이다. 한마디로 고대 거대도시 경주는 지리학적으론 충분히 존재 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성기 경주의 경제력과 사치 수준은 가히 국제적이라고 강조한다. 그 근거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외제품 유행 사례들이다. 여인의 옷에 사용한 비취모(翡翠毛)는 캄보디아 희귀 조류의 깃털로 만들었다. 비녀에 사용한 슬슬전(瑟瑟鈿)은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산 보석으로 만든 장식품이다.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잡은 거북의 등껍질도 장식품으로 사용했다. 가히 당대의 국제도시인 당나라 장안과 어깨를 견줄만한 경제력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다양한 기록 해석과 현장 답사를 통해 고대 경주의 위용을 파악하면서 그 지리학적인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아울러 수도 읽기를 통해 신라라는 국가의 이미지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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