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춘의 도박, 그 결말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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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의 코뿔소' 박해춘(사진) LG카드 사장, 그의 도박은 성공할 것인가'. 8일 오후 LG카드는 이사회를 열었다. 본래는 박해춘 대표의 유임을 확정할 자리였다. 그러나 이날 이사회는 새 대표에 이종호 LG카드 부사장을 선임했다. 박 사장이 연임이 보장된 LG카드 사장 자리를 박차고 우리은행장 공모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20여일 전까지만 해도 금융계에선 박 사장의 유임을 기정사실화했었다. 박 사장 스스로도 유임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데다, LG카드의 대주주가 된 신한지주의 라응찬 회장도 수차례 연임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상황이 급변한 것은 지난달 21일. 박해춘 사장이 우리은행장 공모에 나서는 '도박'을 감행하면서다. 최병길 금호생명 사장과 이종휘 우리은행 수석부행장의 2파전으로 진행되던 우리은행장 공모전은 박 사장이 급부상하면서 3파전으로 진행됐다. 그리곤 곧 박 사장의 유력설로 진행됐다. 금융계에선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느니, 예금보험공사나 정부의 언질이 있었느니 온갖 추측이 흘러나왔다.

신한지주 쪽에서도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급하게 박 사장 후임을 찾느라 허둥대야 했기 때문이다.

신한지주의 한 고위 관계자는 "라 회장은 LG카드 임직원 사기를 감안해 박 사장을 유임시키려 했는데 (박 사장이 공모에 뛰어드는 바람에) 신한지주 모양새가 우습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사장은 시중에 흘러나오는 '내정설'이나 '고위층 지원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내정설은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얘기"라며 "숱한 헤드헌터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안이 들어와 공모에 나서기로 마음을 바꾼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인생은 어차피 도박이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라 회장에게는 공모 전에 미리 알렸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우리은행장 선임을 위해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내정설까지 나올 만큼 유력 후보로 급부상했지만 그의 도박이 성공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최근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된 박병원 전 재정경제부 차관은 "행장 인사에 관여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박 내정자의 발언을 두고 박 회장 자신의 내정을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하는 노조 무마용으로 '박해춘 카드'를 버리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해춘 사장은 부실덩어리인 서울보증보험.LG카드를 정상화시킬 때 앞만 보고 내달렸다고 해서 '금융계의 코뿔소'로 불린다. 강성 노조나 외압에 결코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도 그런 별명에 한몫했다.

박 사장 도박의 성공을 점치는 이들은 그가 서울보증보험 사장을 거쳐 2004년 LG카드 사장으로 올 당시를 예로 든다. 당시 박 사장은 후보군으로도 거론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인사권자였던 이헌재 부총리에게 최후의 '낙점'을 받은 사람은 바로 박 사장이었다.

우리은행장 선임을 결정짓는 이사회는 23일이다. 이제 보름 후면 그의 '도박'은 성패가 가려질 것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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