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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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심리. 우리나라 고유 품종의 배이름이다. 조선조때는 궁중 진상품으로까지 올라 그 명성을 떨쳤다.
이름부터가 「무심의 경지」를 최상의 해탈경으로 삼는 불교와 인연이 닿아 있을 법하다. 우선 그 전래의 역사가 불가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문헌상의 기록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고승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돼있다.
무심리는 이상하게도 강원도 인제지방에서만 재배돼 그지방의 특산물이 됐다. 표주박모양의 이 배는 첫눈이 내릴때 수확하는 만종이다. 왕겨에 묻어 저장을 하면 다음해 추석때까지도 속이 노랗게 익으면서 독특한 향과 맛을 낸다. 껍질 색깔은 투명한 연노란색.
이 명품의 배는 일본배가 들어와 대량 재배되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해 거의 멸종상태였다. 최근 강원도의 한 농고 교사가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몇그루의 인제 무심리나무에서 접지를 얻어 대량 번식시키는데 성공했다. 돌배나무를 대목으로한 무심리 접목은 현재 5천여그루가 자라 지난해부터는 일부 성장목에 배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일본배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80년 남짓됐다. 1906년 구한말 정부가 서울 뚝섬에 원예시험장을 만들고 일본배 장십랑을 재배했다. 시험장에서는 일본배에 우리 재래종 배들을 교배시켜 달고 맛있는 신품종을 개발하기도 했다.
원래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청실네·황실네·고실네 등으로 불리는 고유품종의 배가 재배돼왔다. 『신당서』에는 발해의 배와 오얏등이 소개돼 있고 『고려사』에도 배나무 식재에 관한 기록이 있다. 유럽도 배는 가장 오랜 재배역사를 가진 온대과수중의 하나다.
배는 중국배·일본배·서양배로 크게 분류되는데 현재 가장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일본배들은 모두가 우리나라 남부 및 중국 양자강연안에 분포돼 있는 돌배를 기본종으로 해 개량한 품종들이다.
무심리의 부활은 일본배가 판치는 우리과수 재배현실에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전국 각지에서 쇄도하는 묘목주문을 「인제 특산물화」하겠다는 지역이기주의로 반출을 억제한다는게 떨떠름할 뿐이다. 부디 전국에서 널리 재배돼 세계적 명품의 배가 됐으면 싶다.<이은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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