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영은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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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전두환대통령과 김재익경제수석(83년 버마에서 순직)팀은 82년 행정수도 내지는 정부부처 이전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이 계획을 참고한적이 있다고 한다.
특히 김수석은 전기획단관계자들을 불러 헬기를 타고 후보지로 꼽혔던 중부지역을 여러차례 둘러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신수도구상이었다는 흔적은 없다.
5공 핵심경제참모였던 S씨의 설명.
『5공경제 최대현안은 물가였습니다. 그래서 예산도 동결할 만큼 긴축정책을 썼지않습니까. 수도권폭발이야 누구든지 걱정했던 문제였지만 신수도식해결방법은 불가능했습니다. 85년말부터 흑자수지로 투자여력이 생겼지만 외채갚는데 주력했잖아요.
정책엔 현실이란 꼬리가 달라붙습니다. 신수도가 아무리 필요하다고 해도 나라재원이 한정돼 있으니 어려운거죠.』
6공 노태우대통령도 81년 제2정무장관시절 전기획단관계자로부터 3공 신수도안에 대해 브리핑을 들을 만큼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6공정부에서 신수도 이야기가 나온적은 없는 것같다.
70년대 청와대 경제2수석실은 이렇듯 중화학·방위산업·행정수도 3개대물을 주도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팀장 오원철수석은 8년동안이나 그 한가운데서 몸을 사리지 않고 일했다는게 주위의 평가다.
주군 박대통령의 신임과 사랑이 그에게 양지였다면 『혼자 말아먹는다』는 일부 얄궂은 세평과 군과의 껄끄러운 관계, 그리고 10·26이후 부정축재자로 몰렸던 반전은 음지였다고 할수있을 것이다.
지난달 26일박대통령서거 12주년이 되던날 그는 추도식이 열린 동작동국립묘지에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김정렴·홍성철·유혁인·박승규·김용환씨등 3공 청와대 참모그룹에 그는 끼지 않았다.
자신의 「은둔구역」 반포아파트에 앉아 그는 『나는 이틀전에 혼자 다녀왔다』고 했다. 민세에 세파에 휩쓸려 익숙해져온 「비동화」의 껍질을 깨기 싫은 표정이었다.
중화학·방위산업·신수도를 증언했던 오씨는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역사적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중요합니다. 나도 밀어붙이다보니 잘못한 것도 있을테지요. 그러나 90년대 세대가 70년대를 이해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때는 국가경영이 전쟁이었습니다. 박대통령이 총사령관이고 나는 일개 참모에 불과했지요. 지금 남아있는 것은 박대통령 수족으로 정신없이 일한게 즐거웠다는 기억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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