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 간첩혐의는 조작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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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정치인들이 최근 국회에 복권 청원한 진보당 당수 죽산 조봉암은 정치사·현대사연구학계에서 이미 복권된 인물이다.
죽산은 59년7월29일 간첩혐의로 교수형 된 이후 세인의 관심에서 사라졌지만 80년대 현대사 연구과점에서 「간첩」혐의는 조작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돼왔다.
오히려 죽산의 「평화통일론」등은 진보적 사회민주주의노선으로 「시대를 앞서간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있다.
죽산의 생애는 흔히 3단계로 나둬진다. 첫 단계는 해방이전까지의 공산주의독립운동단계다. 죽산은 l898년 경기 강화태생으로 일본유학도중 공산주의에 심취, 유학을 중도포기하고 귀국해 공산주의할동을 벌인다. 제2기는 공산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자로 변신한 해방직후.
죽산은 당의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며 친소파인 박헌영을 비판하고 공산주의와 결별한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단순히 「변절」로 비판되기보다 「공산주의보다 민족주의를 앞세운 선택」으로 평가된다. 이는 현대사에서 많은 항일공산주의자들이 해방후 민족주의로 변신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죽산의 정당활동기인 제3기 50년대는 「진보당」으로 대표된다. 죽산은 55년 창당주비위를 발족시킨 뒤 56년제3대 대통령선거에 입후보, 2백16만표를 얻어 보수진영을 놀라게 했다. 선거의 여세를 몰아 11월 진보당을 창당했다. 윤길중 의원은 당시 사무총장격인 간사장을 맡았었다.
진보당은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반대하는 평화롱일론과 기간산업·거대기업의 국유화라는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을 내세웠다.
죽산은 창당l년깨월후인 58년1월 「진보당사건」으로 불리는 간첩사건에 연루된다. 그 혐의는 국시에 위배된 평화롱일론 주장과 간첩 양명산으로부터 김일성이 보낸 돈을 받았다는 두 가지. 평화통일론은 무죄였으나 간첩혐의는 양의 진술 번복에도 불구하고 인정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전쟁직후의 냉전적 분위기속에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학계의 이 같은 평가는 이번 국회청원과정에서도 복권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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