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위상 다시 보는 계기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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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굴과 관련, 전문가들은 최근 30여년 사이 유래없는 성과임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유력하다. 그러면서 일부 최종 판단에 대해선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는 평가다. 문화재위원인 조유전 박사, 충남대 박순발 교수, 그리고 이번 발굴을 주도한 충남발전연구원 이훈 책임조사연구원의 견해를 종합해 본다.

▶조유전 박사=금동 신발은 아무나 신는 게 아니다. 이는 한성 백제가 망해 공주로 내려가기 이전 이미 공주를 중심으로 상당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유력한 실력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도를 옮겼을 때도 별다른 저항감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구체적 해석은 문헌사학자의 몫이나 고고학적으로 그런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제 청자 3점이 발굴된 것을 주목하고 싶다. 중국과의 교류가 그만큼 활발했다는 증거인데 이는 바로 백제의 강성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박순발 교수=6세기 무령왕릉보다 시대도 앞서고, 토착 세력이 이만큼 융성했음을 보여주는 대단한 유적이다. 익산의 입점리 유물보다 시기가 앞선다는 점에서 의미 부여를 하고 싶다. 특히 중국제 계수호(닭머리 모양 장식토기)가 나온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백제 한성기 유물로 이런 토기가 나온 것은 굉장히 드물기 때문이다. 금동 관모.금동 신발.환두대도가 풀세트로 나와 그 당시 지방 세력의 모습을 말해준다. 무령왕릉의 발굴로 백제사를 새로 썼듯 이번 발굴로 한성 백제의 위상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될지 모를 일이다.

▶이훈 연구원=쉽게 말하면 땅을 파다 유물이 나온 것이다. 일단 공주시 '의당농공단지' 일대는 사적 지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유물 수습이 안된 상태라 지금 뭐라 말하기는 곤란하다. 부식.훼손 상태 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물론 본격 발굴 후엔 상황이 지금보다 더 커질 공산도 없지 않다. 웅진(지금의 공주)에는 천도 이전에 이미 이러한 화려한 유물들을 부장할 정도의 세력이 누구일지에 대해 본격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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