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엔화 대출' 부메랑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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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10월 한 시중은행에서 사업자금 용도로 1억 엔의 부동산 담보 엔화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 대표 A씨. 최근 원화 대출로 갈아탈 것을 권유하는 은행 안내문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대출 당시 100엔당 798.7원이었던 원-엔 환율이 6일 현재 813원대로 급등하면서 환차손 위험이 커졌지만 막상 원화 대출로 갈아타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이자 부담부터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엔화 대출은 금리가 연 2.5%지만 원화 대출로 바꾸면 연 8%대의 높은 금리를 물어야 한다.

원-엔 환율 급등으로 엔화 대출에 '비상등'이 켜졌다. 우선 엔화 대출을 주로 쓴 중소기업들의 상환 부담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엔화 대출이 부실화하면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들에도 적잖은 타격이 돼 전체 자금시장의 돈 흐름이 나빠질 수 있다. 또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간 엔화 대출도 적지 않아 자금 상환 압박이 커질 경우 급매물이 쏟아지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초 8078억 엔이던 6개 시중은행의 엔화 대출 잔액은 1년 새 54.6%가 급증, 연말엔 1조2261억 엔에 달했다. 지난해에만 4조8901억원(51억6000만 달러)어치가 늘어난 것이다.

엔화 대출은 대부분 환 헤지를 하지 않아 대출자들의 피해가 그만큼 커질 전망이다. 환율 상승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은행 성북동 백미경 지점장은 "원-엔 환율이 더 오르면 환차손을 견디기 어려워 담보로 맡긴 아파트 등을 급매물로 내놓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엔화로 돈을 빌려 그중 상당액을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편법 운용을 해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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