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사장과 회사공금(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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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회사자금에 대해선 일절 아는 바 없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75년 이후 15년동안 단 한푼의 돈도 내 호주머니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난 돈을 싫어해요.』
『사장인 피고인이 회사자금에 관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자금담당 상무와 경리파트에서 모든 자금업무를 처리했지 난 보고받은 사실조차 없어요. 말이 사장이지 단 한번도 사장자리에 앉아본 적이 없습니다. 작업현장에 있었어요.』
24일 오후 2시 대전지법 1호법정.
구원파신도 등으로부터 11억여원을 사취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주)세모사장 유병언 피고인(50)에 대한 1차공판은 개정초부터 검찰과 유씨의 설전이 뜨거웠다.
미간에 스민 잔잔한 미소,굳게 다문 입술.
유피고인의 양손엔 검찰 공소장 1부가 굳게 쥐어져 있었다.
『82년초 12만주였던 피고인의 주식이 같은해 12월 80만주로 어떻게 늘어났습니까.』
『(주먹을 불끈 쥐며) 회사주식관리자가 내 명의로 늘려놓은 모양인데 어떻게 알겠소. 검찰공소내용은 과장되고 조작된 겁니다.』
달변에 가까운 유피고인의 답변은 마디마디에 격앙된 감정이 가득했다.
손을 뻗치기도 하고 허공을 내리치기도 하고 제스처도 요란했다.
기가 차다는듯 검사는 유피고인 뒷좌석에 앉아있는 전 삼우트레이딩개발실장 김기형 피고인(41) 신문을 시작했다.
유피고인과는 인척관계로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김씨였다.
『84년부터 86년까지 유피고인의 자금담당업무를 보았지요.』
『외국에서 유사장앞으로 돈이 오면 외환도착확인서를 받아 사장님께 보고하고 경리파트에 알려주는 심부름 역할만…』
『그 돈은 누구의 지시로 인출되고 쓰여집니까.』
『회사지시로… 경리과 직원이 필요하면 쓰고 통장은 은행에….』
『유피고인은 자금에 관한한 보고받은 바도 아는 바도 없다지 않습니까.』
『….』
검사의 다그침에 세모직원·구원파신도 등 재판을 지켜본 2백여명의 얼굴엔 당혹감이 역력했다.<대전=최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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