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원 스토리, 정상→몰락→재기로 굴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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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몰락과 재기로 널리 알려진 개그맨 겸 방송인 서세원씨의 날개가 또다시 꺾였다. 서씨는 대표이사로 재직했던 회사의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데 이어 의욕적으로 출발했던 회사의 주식도 전량 팔아치웠다.

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서씨는 보유 중이던 닛시 엔터테인먼트 주식(140만주, 5.01%) 전량을 팔았고 전환사채권 124만주만 보유하게 됐다. 지난 2005년8월 의욕적으로 출발했던 회사의 주가도 최대 1/10토막으로 동반추락했고 감자를 이유로 거래마저 정지된 상태다. 회사는 서씨의 주식 매각으로 현재 최대주주의 실체마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씨는 지난 79년 개그맨으로 데뷔해 영화감독, 제작자, 라디오DJ, 방송인 등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검찰 수사와 영화 흥행실패 등으로 여러 차례 재기와 몰락을 반복했다.

79년 개그맨으로 데뷔한 서씨는 특유의 입담과 재기로 연예계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영11, 청춘행진곡(아버지와 아들) 등 다양한 프로에 출연하며 숱한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당시 최고의 개그맨이었던 김병조와도 호흡을 맞췄고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 로 시작하는 그의 개그송은 초등학생에게는 교과서의 동요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개그맨으로서의 인기와 자신의 넘치는 아이디어를 발판으로 영화계에 도전했지만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1986년 '납자루떼'로 메가폰을 잡았으나 돌아온 것은 관객 1만7000여명(서울 기준)에 그치는 참담한 흥행 실패였다. 코미디 영화일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젊은이들의 꿈과 고뇌 등을 담은 청춘 물이자 로드 무비였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문법 등으로 공감을 얻지 못 한 것. 1980년 '머저리들의 겨울'로 영화배우로 데뷔한 영화인이기도 했던 그의 영화계에서의 첫번째 실패였다.

'웃으면 좋아요', '천하한마당' 등의 코미디프로에서 여전한 인기를 과시했던 그가 방송계의 권력으로까지 등극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 MC와 DJ로서였다. 서세원쇼 MC와 '서세원의 2시가 좋아'(이상 KBS) 라디오 DJ, 서세원의 좋은세상 만들기(SBS) MC 등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를 세개나 맡으면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것. '오늘은 왠지' 로 시작되는 70년대 음악다방식 DJ 멘트와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심야프로의 입담거리로 활용한 그만의 센스에 시청자(청취자)들은 환호했다.

방송가의 파워맨 서세원이 영화계에서 우뚝 선 것은 제작자로서였다. 2001년 '조폭마누라'의 제작비를 대면서 노심초사했던 그는 영화의 대박으로 돈방석에 앉게 됐다. 납자루떼에서 조폭마누라까지의 그의 영화계 역정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흥행 성공을 위한 로비, 도박설, 허리 디스크, 해외도피 등이 어우러지며 흥행에서의 화려한 성공 못지 않은 좌절도 맛봐야 했다. 조폭마누라에 이은 '긴급 조치 19호' '도마 안중근' 등 이후 손댄 영화들이 연달아 혹독한 평가를 받은 것도 그에게는 아픔이었다.

그뒤 그는 검찰의 자백강요, 강압수사 등을 폭로하며 일부 결백함을 인정받기도 했다. 서씨가 다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엔터테인먼트 기업 대표 겸 최대주주로서였다. 지난 2005년8월 우회상장을 통해 자신의 프로덕션을 코스닥 상장사(서세원미디어그룹 → 닛시엔터)로 만들었던 그는 CB(전환사채)와 유상증자, 외자 유치 등으로 몸집을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급등락으로 주주와 투자자를 불안하게 했고 그 뒤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원자재 중개업을 병행하는 모습을 보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씨가 대표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닛시엔터는 지난해 12월 90%를 감자했고 연초에는 서씨의 횡령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연예계와 방송가 데뷔 후 30년, 십여년 이상의 최고의 MC와 개그맨, 2년여의 상장사 대주주(대표이사), 감독으로서의 참담한 흥행실패에서 대박 제작자까지, 화려하고 굴곡많은 경력을 자랑하는 그가 또다시 재기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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