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돋보기] "담보 걱정 마라" 약속에 계약했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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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부동산 계약을 망설이는 세입자에게 "걱정 마시라"며 계약을 종용했던 공인중개사의 말은 어느 정도의 법적 책임이 있을까. 이럴 경우 "내가 책임지겠다"고 한 공인중개사의 약속은 세입자의 손해를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부동산 중개 행위에 해당한다고 대법원은 4일 밝혔다.

경기도 부천시 김모(55)씨는 2000년 12월 부동산 중개업자 임모씨를 통해 한 아파트를 보증금 6500만원에 전세 계약했다. 김씨는 계약금 650만원을 건넨 일주일 뒤 입주할 아파트의 등기부 등본에 채권최고액 6000만원의 주택은행 근저당권이 설정된 것을 발견했다. 이에 계약을 파기하려 하자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업자가 함께 말렸다. "잔금을 받아 대출금을 갚고 근저당권을 말소하겠다"는 것이었다. 중개업자는 "이 계약으로 손해가 생기면 부동산에서 책임진다"는 특약 문구까지 써줬다. 이에 김씨는 잔금을 모두 줬다. 하지만 집주인은 잔금으로 은행 돈을 갚았다가 바로 다음날 다시 4500만원을 대출받고는 사라졌다. 이후 이 집은 경매에 넘어가 세입자 김씨는 1600여만원밖에 돌려받지 못했다. 김씨는 중개업자 임씨와 공인중개사의 손해배상 공제조합인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은 공인중개사 임씨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공인중개사가 가입한 배상금 공제조합인 부동산중개업협회의 책임은 2심에서 인정하지 않았다. "임대차 계약이 체결된 이상 중개업자의 중개 행위는 끝났고, 중개업자가 '책임지겠다'고 한 것은 부동산 중개가 아닌 개인적인 손해 담보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1부는 이 사건 상고심에서 "부동산중개업협회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원고 승소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중개업자가 잔금 지급, 등기 하자 확인 등 의무 이행을 약속하고 계약을 적극 권유했다면 업자와 협회는 계약 체결 이후에도 세입자가 입은 손해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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